"러시아가 '자전거 망명' 부추겼다"… 핀란드, 마지막 국경도 폐쇄

입력
2023.11.29 19:30
이달에만 동부 국경에 이주민 900명 몰려
"친서방 행보에 러시아가 보복 조치" 주장
"이주민 영하 25도에 방치… 국제법 위반"

핀란드가 러시아와의 접경 지역을 사실상 봉쇄했다. 러시아를 거쳐 핀란드로 이주하려는 제3국 이주민이 급증한 데 따른 조치로, 결국 한 곳만 개방돼 있던 국경 검문소마저 문을 닫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며 유럽연합(EU)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가 최근 핀란드의 친(親)유럽 기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주 행렬을 조장하고 있다는 게 핀란드 정부의 시각이다.

28일(현지시간) 핀란드 매체 헬싱키타임스에 따르면,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달 30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라자·주세피 국경 검문소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1,340㎞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양국 사이의 검문소는 총 8곳이 있는데, 지난 18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7곳의 문을 닫은 데 이어 마지막으로 남은 한 곳도 운영을 중단한 것이다.

원래 핀란드 동부 국경은 유럽 전역에 몰아치는 이주 물결에서 자유로운 상태였다. 하루에 한 명이 이곳을 넘을까 말까였다. 그러나 이달에만 소말리아·예멘·시리아 등을 떠난 이주민 900명이 망명 서류 없이 몰려들었다. 마리 란타렌 핀란드 내무장관은 이번 국경 폐쇄에 대해 "이민자들에게 '오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겨냥한 러시아의 전쟁 전략"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이주민들의 행색이다.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전거를 타고 국경에 도착했다. 한 익명 당국자는 영국 가디언에 "다수의 이민자가 운동화, 자전거에 의지한 채 핀란드의 눈밭을 건넜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최근 이민 시도 급증을 러시아의 '의도적 공격'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자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가 핀란드 사회 불안을 고조시키고자 이민자들을 이용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오르포 총리는 이날 “최근 이주는 핀란드를 겨냥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대상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 전쟁 전략)의 일환으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러시아의 관여를 보여 주는 정황도 있다. 독일 도이치벨레방송은 “러시아 버스가 난민 30여 명을 국경까지 태워준 뒤 자전거를 나눠 주는 모습을 본 목격자도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폴란드와 에스토니아도 러시아가 이주민을 자국에 보내고 있다며 반발했다. 러시아는 이 같은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다만 국경 전면 폐쇄가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이주기구(IMO)와 유엔난민기구는 핀란드의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가디언은 “12월 영하 섭씨 25도까지 내려가는 날씨 속에서 핀란드 정부가 방치 상태인 이민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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