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 수위가 높아만 간다. 본인에게 오는 질문에 답을 피하지 않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결국 문제는 법무장관으로서 하지 않아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꼭 답변해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피하지 않는 것과, 정치적 논란을 자초할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민주당 저격수' 한동훈의 원맨쇼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내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직 등판도 않았는데도, 한 장관을 두고 비례대표 후순위를 준다느니, 종로를 가게 한다느니, 강남에 보낸다거나, 용산에 간다는 둥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 장관 특유의 개인기가 총선 국면에서 200% 발휘된다면 선거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보다 더한 표현들을 사용해 민주당을 공격하는 한 장관은 '국회스테핑'을 넘어 최근에는 지역을 방방곡곡 돌며 민심을 훑고 있다. '통상적인 법무부 장관의 지역 방문 일정'이라기엔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 나온다. '대선주자'가 할 법한 말들을 꺼내놓으니 지역에 방문한 본래 목적인 법무행정과 관련한 발언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 민주당을 저격하고, 민주당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지역 곳곳을 돌며 노련한 정치인 같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지만 놀랍게도 아직 도 그는 국무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세비도 받고, 국무위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력과 혜택을 충분히 활용하며 여론지형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이제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언론은 한 장관의 정치중립의무 위반을 지적하기보단 배우 이정재씨를 만나 식사하는 등의 행보에 주목한다. 한 장관의 행보에 대한 문제제기보단 한 장관의 모습을 다루는 것이 주목도가 높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이 가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고, 팬덤이 형성돼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 장관은 여론의 모든 주목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모습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공식 입당과 출마라는 제대로 된 링 위에 서지 않았다. 다음 총선은 무조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가 될 것이 자명한데, 윤 정부의 핵심인 한 장관이 가져갈 수 있는 중도확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가 갖고 있는 높은 주목도가 정치인에게는 큰 자산이지만 동시에 큰 위험부담도 될 수 있다.
한 장관이 등판한다면, 국민의힘에 호재일까 악재일까.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그가 등판하는 순간, 혹독한 검증의 시간은 시작된다.
상대를 악마화해 반사이익을 얻는 정치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양당이 잘하기 경쟁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혐오를 이끌어 내 선거에서 이기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여야는 상대를 혐오하는 기반 위에서 정권교체를 각각 여러 차례 이뤄냈지만, 정작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의 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 구조를 먼저 깨는 쪽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직선거법 24조에 따르면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혐오 정치가 이어지다 보니 여야 협치를 찾기 어렵고, 지역구라는 것이 각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다보니 1년 전 지역구를 획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허공 속 메아리 같았다. 2000년대 이후 국회는 대체로 총선 40여 일 전에야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가을 혐오 정치에 반대하며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지켜야 한다던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을 만났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과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오랜 시간 정치 전반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했다.
"어떤 선거제도가 혐오 정치를 지양하고, 잘하기 경쟁을 할 수 있을까",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고 국회에 더 많이 전달될 수 있도록 어떤 제도화가 필요할까" 등 이 의원과 여야 젊은 정치인들 간의 정치 발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했다. 각자 속해 있는 당이 다르고, 제도나 장치에 따라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의원과 젊은 정치인들 간의 논의에서 진영논리를 떠나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생각과 방법이 다를 수 있었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은 같았다.
지난주 이 의원을 사석에서 다시 만났다. 이 의원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직을 걸겠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당시에는 직을 걸겠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지난 28일 이 의원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험지로 가겠다"라며 현 지역구에서 불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본연의 가치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던 것처럼 민주당의 레거시를 망각한 채 당 대표 사법 리스크를 막는 데 당력을 훼손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던 민주당에서 여성 비하표현이 있었음에도 이를 두둔하는 당직자가 존재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가치를 버렸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을 때 가치를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는 이탄희 의원의 결단은 민주당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의 가치를 아전인수 격으로 끼워맞춰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정치가 민주당의 레거시를 이어갈 거라 생각한다. 이탄희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건강한 민주당을 만드는 방향을 잡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