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격 인상을 하지 않기로 했다.”(식품가공업체)
“OO 적용을 관계 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정부)
계속되는 고물가 부담에 정부가 직접 기업을 찾아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물가 담당 부처의 ‘밀고 당기기 협상’이 올해 내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과자업체 오리온이 대표적 예다. 오리온을 만난 농림축산식품부는 “가격을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대신 “1년 전보다 조제땅콩 수입 가격이 5.4%가량 오르니 OO를 해달라”는 기업 요청을 들어줬다.
OO는 ‘할당관세’다. 수입하는 물품에 붙는 세금(관세) 20~30%를 0%로 깎아주는 것으로, 정부가 가격 인하를 요청할 때 자주 내미는 협상 카드다. 하지만 역대 최악으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할당관세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할당관세 운용 계획을 이미 초과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계획한 할당관세 지원 규모는 1조748억 원인데, 올해 8월(1조6,508억 원)에 이를 훌쩍 넘었다. 올해 들어 물가 안정을 위해 시행한 긴급 할당관세는 9번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기재부는 올해 할당관세 지원 규모가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6,758억원)의 3배가 넘는 금액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감면 대부분은 물가·수급 안정이 목적이다. 8월까지 감면액의 절반가량(8,092억 원)이 물가 안정 목적이었고, 기초원재료(3,218억 원), 신성장(2,654억 원), 취약산업(2,172억 원) 지원 순이었다. 정부는 9월 이후에도 물가를 잡기 위해 고등어 1만 톤과 바나나, 망고 등 수입 과일, 설탕 식품용 감자·전분 등의 식재료에도 긴급 할당관세를 추가로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국경 단계에서 세금을 안 걷을테니 그만큼 최종재 가격을 내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할당관세가 '만능'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①수입업체 관세 인하→최종 판매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직접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고 ②물가 잡기용으로 꺼내든 할당관세가 ‘세수 감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을 들여 관세를 깎아줬지만 기업들이 그에 상응할 만큼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혈세로 기업을 지원해 준 것과 다름이 없다”며 “물가를 잡기 위해 쓸 수 있는 정책이 없으니 꺼내든 것인데, 세수 상황이 녹록지 않은 점을 고려해 단기적으로만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할당관세 규모가 늘어난 영향으로 관세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 10월 재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관세 수입은 지난해보다 2조8,000억 원 줄어든 4조5,000억 원에 그쳤다. 9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전년보다 46조9,000억 원 감소한 436조3,000억 원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물가 불안이 커 할당관세 품목이 크게 늘었고, 긴급 할당관세를 적용한 경우도 많았다”며 “가격이 안정되고 있는 만큼 할당관세 품목을 올해 101건에서 내년 76개로 줄여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