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 고위 간부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담은 사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시 시점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2주 후라는 점에서, 사실상 팔레스타인 지지 의사 표명으로 비칠 법하다. 특히 ‘이스라엘 전폭 지지’ 입장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노선에 정보 당국 고위 인사가 반기를 든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이번 전쟁을 둘러싼 미국 정부 내부 분열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게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2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CIA의 정보 분석 담당 부국장보가 지난달 21일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고 있는 한 남성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 첫 화면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 공격해 양측 간 전쟁이 시작된 지 딱 2주 후였고, 해당 사진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용도로 종종 쓰인다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FT와 미국 NBC방송 등에 따르면, 이 간부는 수년 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사진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현재 관련 사진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이며, 그는 CIA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상황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FT에 해당 간부가 과거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CIA는 전체 직원들에게 ‘소셜미디어에 정치적 메시지를 올리지 말라’고 지시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전직 미국 정보 당국 고위 관리들은 FT 인터뷰에서 화들짝 놀라며 “명백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치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건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FT는 “정보기관 고위 간부가 정치적 이미지를 공론장 플랫폼에 올리는 건 매우 이례적인 행위”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전쟁 중단 압박을 더 가해야 하는지를 두고 미국 정부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짚었다.
시점도 미묘하다. 이 같은 사실은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이 카타르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모사드) 수장과 만나 교전 중단 연장 여부 등을 논의하는 와중에 FT 보도로 알려졌다. 휴전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정부 내의 ‘이스라엘 비판’ 기류를 보여 준 셈이다.
실제 이스라엘 편을 드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 직원들의 항의는 잇따르고 있다. 이달 초 백악관 참모 약 20명은 제프 자이언츠 비서실장 등과 면담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 있는지 따져 물었다. 지난 13일에도 국무부 직원 100명이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 담긴 메모에 집단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