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줍는 게 돌고래 지키는 길이래요"… '고사리손'의 제주 해변 '플로깅'

입력
2023.11.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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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고향사랑기부금 1호 사업> 
'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플로깅' 
 기부금 1억 투입, 바다 정화 활동 펼쳐

“쓰레기 때문에 바다가 위험하다고 해서요.”

25일 제주 제주시 협재해수욕장에서 만난 진유찬(5)군이 모래사장에 버려진 폐밧줄 조각을 손으로 집어 들며 말했다. 진군은 이날 협재해수욕장에서 진행된 ‘남방큰돌고래 친구와 함께하는 플로깅’ 행사에 참여했다. 걷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인 ‘플로깅’의 말뜻처럼, 진군 외에도 여러 가족, 연인, 친구, 장애인단체 회원 등이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모래사장 곳곳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진군 어머니 홍윤숙(47)씨는 “유찬이가 커서도 아름답고 깨끗한 제주바다와 남방큰돌고래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참가했다”며 “쓰레기를 줍는 게 바다를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더니 투정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흐뭇해했다.

고향사랑기부금 사업, 제주가 처음

이번 플로깅 행사는 남방큰돌고래 등 제주 연안의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청정 제주바다를 지키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도가 고향사랑기부금 1호 사업으로 마련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자신의 주소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 원 이내 금액을 기부하면 10만 원까지는 전액, 10만 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의 세액공제와 함께 기부액의 30% 이내에서 지역 특산품 및 관광상품 등의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제주고향사랑기부금은 9월 말 기준 6억6,900만 원이 모였고, 이 중 1억 원을 플로깅 사업에 사용했다.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사업을 벌인 곳은 전국 지자체 중 제주가 처음이다.

이날 협재해변에서는 ‘비치코밍’ 행사도 함께 열렸다. 비치코밍은 ‘바다(beach)’와 ‘빗질(combing)’의 합성어로, 뜰채를 이용해 모래사장 속에 파묻힌 유리 조각이나 플라스틱 등을 제거하는 일이다. 맨발로 해변을 걸을 수 있도록 가꾸자는 취지다. 행사 참가자들이 삽으로 모래를 떠 구멍이 뚫린 바구니에 담아 흔들자 플라스틱 조각 등 미처 보이지 않던 쓰레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주현(49)씨 부부는 “하얗게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 속에 쓰레기들이 이렇게 많이 버려져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이어 “사실 고향사랑기부금 제도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 국민들이 제주를 위해 기부한 돈이 제주바다를 지키는 데 사용된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4일에는 남방큰돌고래가 자주 출몰하는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앞바다에서 전문 다이버 50명이 바닷속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로빙(플로깅과 다이빙의 합성어)’도 진행됐다. 현재 개체수가 12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으로 지정된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선 유일하게 제주 연안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연안 난개발로 인한 서식처 감소와 해양쓰레기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청정 제주바다, 전 국민의 관심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실 모금은 저조한 편이다.

연간 500만 원 상한의 기부 한도, 기부주체 제약(법인 및 이해관계자)과 거주지 기부제한 등 과도한 규제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제주도 역시 올해 40억 원 모금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다른 지자체와 비교하면 제주의 기부액과 기부 건수는 최상위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가 첫 사업으로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행사를 택한 건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제주의 청정 바다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고향사랑기부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크다는 걸 반영한 결정이다. 아울러 남방큰돌고래와 사람의 공존을 위해서는 바닷속 폐그물과 해양쓰레기 수거가 시급한 과제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국민들이 제주를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해 고향사랑기부에 많이 참여해줘 감사하다”며 “기부금은 제주를 더 아름답고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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