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동안 퍼부어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겨울이 찾아왔다. 삶의 터전을 잃은 피란민들은 이제 부쩍 쌀쌀해진 날씨도 견뎌야 한다. 인질 석방을 위한 일시 휴전 덕에 얼마간 구호품이 늘어났지만, 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란민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전쟁이 재개되면 인도주의적 지원도 다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급선무는 이참에 생필품을 가급적 많이 투입하는 일이고, 교전 중지 기간을 좀 더 연장하는 게 다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일시 휴전을 이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는 카타르발 소식에 성명을 내고 “연장된 교전 중지 기간을 활용해 가자지구 민간인 대상 인도적 지원을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잖아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날 언론에 “휴전 연장으로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게 됐으나, 전체 주민의 급박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이틀이)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한 터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은 곧바로 이행됐다. 원래 합의대로라면 나흘간의 일시 휴전이 끝났을 28일, 미군 지원을 받는 구호용 항공기 3대 중 1대가 가자지구 남부와 가까운 이집트 시나이반도 북부에 우선 도착했다. 항공기는 겨울 의류와 식량, 의약품 등을 싣고 있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27일 전화 브리핑에서 “겨울 우기가 시작된 가자지구의 주민들에게 긴급한 물품들이 포함됐다”며 “구호품은 유엔에 의해 가자지구 내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며칠 안에 항공편 추가 구호품이 더 전달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유엔은 이집트와 접한 라파 국경을 통해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공급하고 있다. 구테흐스 총장은 교전 중단 기간 연장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장악한 다른 국경을 통해서도 지원 물품이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은 내친김에 일시 휴전 추가 연장도 꾀하는 모습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7일 브리핑에서 “교전 중단이 더 길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며 “휴전 연장이 이어지도록 미국 안보팀이 계속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2일 합의안 승인 당시, 하마스의 재정비를 우려해 일시 휴전 기간을 최장 10일로 못 박은 이스라엘 정부와는 생각이 다른 셈이다. 현 합의는 하마스의 인질 석방이 지속되면 휴전 기간도 늘어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주 후반 이스라엘을 또다시 찾는다.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증가 흐름을 유지하고, 민간인 보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게 국무부 설명이다. 지난달 7일 개전 이후 블링컨 장관의 이스라엘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