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전까지 야구 선수와 가수에 도전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고, 마침내 직업을 '뮤지컬 배우'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 작품 덕분이었다. 2015년에 이어 8년 만에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다시 출연하게 된 배우 민우혁(40)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다.
민우혁은 2개월여의 부산 공연에 이어 30일부터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을 최재림과 번갈아 연기한다.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우혁은 "죽기 전 마지막 역할이 장발장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꿈의 배역이었다"며 "이렇게 빨리 맡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민우혁은 2015년 '레미제라블'에서 혁명을 이끄는 청년 앙졸라 역을 맡으면서 실패의 연속처럼 보였던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야구 선수의 꿈을 향해 10년간 달렸지만 부상으로 뜻을 접어야 했고, 이후 10년간 도전한 가수의 길도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 "한 번도 뭔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뮤지컬 배우 활동을 시작하고도 재미있지만 곧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레미제라블'은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디션에 참여한 작품이었어요. 특기를 살려 체육 선생님으로 전직할 준비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레미제라블'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이야기에 배역을 정해 두지 않고 무조건 오디션에 응한 것도 그래서다. 장발장을 염두에 두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오디션에 참가하긴 했지만 그래도 장발장 역 캐스팅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프로듀서인 캐머런 매킨토시가 '빵을 훔쳐 먹게 생겼다'고 평가했다고 하니 전략이 주효한 셈이지만 합격 소식을 듣고 딱 30초만 좋았을 정도로 부담감도 컸다. 그는 "성악과 실용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보컬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레미제라블'은 민우혁에게 배우로서 가치관을 완전히 달리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란 매력 있는 모습,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작품의 본질을 전함으로써 관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직업임을 이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아빠가 뮤지컬 배우라고 학교에서 자랑할 정도로 컸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이 시기에 보여줘야 할 아빠의 모습을 장발장에게서 배우고 있다"며 "인간 민우혁을 성장하게 하는 뮤지컬은 이제 직업을 넘어 일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전설적 제작자 매킨토시, 연출가 트레버 넌,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가 손을 맞잡은 작품. 1985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후 53개국에서 1억3,0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과 2015년에 라이선스 형식으로 공연됐다.
민우혁은 '레미제라블'이 여전히 감동적인 이유로 '사랑'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꼽은 것도 "그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을 보리"다. 사랑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히는 대사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자나 마찬가지라고 여길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민우혁에게 이 대사는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뮤지컬은 제 인생의 나침반이에요. 제가 맡아 온 작품의 캐릭터가 제가 가야 할 길을 조금씩 인도해 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앞으로 드라마·영화 출연이 늘더라도 뮤지컬은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