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당 혁신의 갈림길 앞에서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 의중에 주파수를 맞추려 하고 있다. 당내에선 지난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수직적 당정관계 해소가 최우선 혁신 과제로 꼽혔지만 윤심(尹心)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최근 '김기현 대표 체제 유지냐,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전환이냐'를 둘러싼 당내 논쟁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여전히 윤심을 살피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윤 대통령은 당시 유럽 순방 중이었지만 의원들은 대통령 의중이 무엇인지 설왕설래를 이어갔다. 상황을 정리한 것은 윤 대통령 대선후보 시절 수행실장이었던 이용 의원이었다. 그가 지난 23일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로 끝까지 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김기현 체제 유지'로 무게추가 확 기울었다.
김 대표는 25일 지역구인 울산에서 연 의정보고회에서 "윤 대통령과 자주 만난다. 어떤 때는 만나면 한 4시간씩 이야기한다. 직접 만나서 '프리토킹'을 한다"며 사실상 윤심을 과시했다. 이를 두고 비영남권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총선 승리에 필요한 중도 민심이 아닌 윤심을 기준으로 당의 진로를 결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도부와 친윤석열계 실세, 영남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내지 험지 출마를 권고한 것을 두고도 윤심 논쟁으로 흘렀다. 윤심을 등에 업었다고 알려진 인 위원장의 거듭된 압박에도 지도부와 친윤 의원들이 강하게 버티면서다. 그러자 인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며 권고 배경에 윤심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발언이란 점에서 논란을 키웠다. 이에 대통령실이 "그런 것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혁신위 동력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용퇴 압박을 받고 있던 김 대표가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혁신위에 대한 반격에 나선 계기였다.
그러나 인 위원장의 대통령 언급을 비판했던 김 대표가 25일 울산에서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강조한 것은 이율배반이란 지적이 불가피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7일 "'나는 윤심 팔아 당대표 되고 지금도 윤심 팔아 당대표직 유지하고 있지만, 나만 윤심 팔아야지 너희들은 윤심 팔면 안 된다'는 이런 당대표 가지고 총선이 되겠느냐"며 꼬집은 이유다.
당내 논란에 윤심을 끌어들여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재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수직적 당정관계를 고쳐 나가야 할 주체인 당대표나 혁신위원장이 본인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용산을 끌고 오는 형국"이라며 "대통령의 뜻을 끌어들여 자발적으로 수직적 당정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오히려 후퇴한 모습으로 비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밝혔다.
모호한 윤심이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평가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이 혁신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이 당내 윤심 경쟁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당의 최대 오너인 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당 일각에선 정기국회 이후 윤 대통령이 혁신의 칼을 빼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