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공개 발언이 27일 처음 나왔다. 병립형은 과거처럼 정당 투표만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이 병립형을 강조하자 민주당은 '야합'이라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투표+지역구 투표 연계)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경우 민주당이 최대 35석까지 국민의힘에 뺏길 수 있다는 내부 시뮬레이션 결과(▶관련 기사 : "비례대표 국민의힘에 최대 35석 뺏긴다"... 민주당의 위기감. 본보 11월 27일 자)가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위성정당을 포기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는 하나 35석은 충격적인 수치다. 민주당은 29일 선거제를 논의할 의원총회를 연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을 지낸 진성준 의원은 이날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내년 총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우리가 병립형도 현실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연동형을 통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게 옳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위성정당의 피해가 훨씬 큰데 연동형만 고집할 수 있느냐"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고충도 함께 토로했다. 그는 "오히려 (병립형 회귀가) 당내 다수라고 생각한다"며 "진보시민사회 쪽에서 연동형을 워낙 강하게 주장해 솔직하게 얘기를 못 꺼내놓고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이란 정당 차원에서 보면 정의당이나 다른 진보정당들은 자기 당략을 위해 연동형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면서 "우리 의석 헐어서 진보정당 키워주는 게 말이 되는 것이냐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친이재명계' 김용민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비슷한 주장을 올렸다. 그는 "양당제와 다당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권자가 이해하기 쉬울 것 △지역주의를 타파할 것 △민주당의 과반의석 등 원칙을 언급했다. 현행 준연동형보다는 권역이 가미된 병립형에 가까운 주장이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중진들은 병립형을 주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우리 당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입장은 (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면서 "원내에서 이제 공론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의총에서 병립형이 힘을 받을 것으로 주목되는 대목이다.
다만 당내 반발 또한 만만찮다. 병립형에 반대하는 이탄희 의원 등 54명은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을 촉구하면서 이재명 대표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지, '국힘(국민의힘)과의 야합'을 할 것인지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며 "이 대표가 그 결단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의원은 "선거제 퇴행은 안 된다"며 "이재명 지도부가 수많은 약속을 어기고 선거법 야합에 나선다면 우린 모든 것을 걸고 민주당의 뜻있는 의원들과 힘을 합쳐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줄곧 병립형을 주장해왔다.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의 키를 쥔 셈이다.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돌아설 경우 여야 합의는 무난한 반면, 정의당을 비롯한 제3지대는 타격이 불가피한 구도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지역구 의석을 연동형 비례대표로 만회하려던 구상이 헝클어지기 때문이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통화에서 "연동형은 촛불 연대의 성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이들이 한국 사회를 바꾸겠다고 한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병립형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