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책 만듦새 위한 출판사와 편집자의 적극적 역할 있어야

입력
2023.12.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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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편집 10종

편집 부문 예심은 다른 무엇보다 출판사와 편집자의 적극적 역할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훌륭한 만듦새와는 별개로 독보적인 기획과 편집 역량이 돋보이는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발길 닿지 않은 땅 비무장지대(DMZ)의 자연과 역사, 지형과 지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100년 전 백화점을 700여 장의 이미지를 활용해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한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초판 속의 일러스트를 살리고 꼼꼼한 주석을 더한 '파브르 식물기'가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았다. 절판된 '정부희 곤충기'를 복간하고 13년 만에 신간을 낸 '곤충의 짝짓기'와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지 43년 만에 한국어로 완역 출간된 '한국전쟁의 기원'은 출판사의 뚝심에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오뇌의 무도 주해' '에픽테토스 강의' 등 편집이 까다로운 고전은 단연 돋보이는 작업이었고, '민족의 장군 홍범도'는 책 그 자체로 주목받았다. 10개 출판사가 합심해 공동의 시리즈를 만들어가는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와 지역 출판사가 지역에 사는 청년의 삶을 길어 올리는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는 주도적인 기획력이 의미 있다는 평가다.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최지혜 지음·혜화1117 발행

미술사학자이자 근대 건축 실내 재현 전문가인 저자가 1920~30년대 경성백화점에서 판매된 130여 개의 상품을 분석했다. 과거 사람들이 썼던 물건에 어떤 욕망과 취향이 투영돼 있는지 들려주며 당대의 문화와 소비 경향을 보여준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 광고 이미지를 동원해 700여 장의 사진을 수록했다.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박경만 지음·사월의책 발행

희귀조류이자 멸종위기종인 두루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아오는 땅, DMZ. 기자인 저자는15년 동안 백령도부터 동해안까지 DMZ 곳곳을 취재하며 접경지역의 생태와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망한다. 책은 120여 장에 이르는 사진들과 수십 장의 지도들로 DMZ 답사의 길잡이 역할도 하고 있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지음·한길사 발행

홍범도 장군을 42년간 연구해 온 시인이 독립운동사에서 소외되고 왜곡된 홍 장군의 전 생애를 재조명했다.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장군을 부활시켰다. 평전에는 성장 과정부터 지난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의 유해 봉환까지를 담았다.

▦파브르 식물기

장 앙리 파브르 지음·조은영 옮김·휴머니스트 발행

‘파브르 곤충기’로 널리 장 앙리 파브르는 식물을 깊이 연구한 자연과학자였다. ‘식물기’에 곤충과 다양한 동물을 등장시켜 동식물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책은 식물계 범주의 특징과 기본 구조를 살펴보고 식물이 다른 생명체에게 미치는 영향을 짚어낸다. 식물세밀화가의 삽화를 표지에 싣고 초판 본문의 삽화를 재현했다.

▦에픽테토스 강의 1·2, 3·4

에픽테토스 지음·김재홍 옮김·그린비 발행

스토어철학의 대표자 에픽테토스의 강의록. 에픽테토스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린 것’과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 간의 구분에서 출발한다. 명예와 지위 등 외부적 힘으로 일어나는 것에 매달려 사는 것이 노예의 삶이라 주장한다. 요약본에 해당하는 ‘엥케이리디온’과 단편을 망라하고 서양 고전철학 박사의 해제를 덧붙였다.

▦오뇌의 무도 주해

김억 편역·구인모 주해·소명출판 발행

근대기 한국 최초의 시집이자 번역 시집인 ‘오뇌의 무도’ 주해본. 김소월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이 외국 시를 골라 번역해 펴낸 것으로 국문학자가 원문의 오류를 정정하고 주석과 해설을 더했다. 새로운 비평과 주석을 통해 문학 연구의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자 했다.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서진영 지음·온다프레스 발행

지역 전문 취재 작가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은 과연 살 만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6개월간 춘천을 탐방했다. 30대 청년 1인 가구가 실제 이주 가능성을 고려하며 주거와 교통, 자연 등 여러 조건을 검토했다. 이 기획은 춘천문화재단과 지역 출판사 간의 협력으로 로컬의 본질을 탐구하며 시작됐다.

▦곤충의 짝짓기

정부희 지음·보리 발행

우리나라 곤충을 관찰하고 기록한 ‘정부희 곤충기’의 다섯 번째 책. 곤충학 박사인 저자가 우리 땅 토박이 곤충부터 '운수 대통'해야 볼 수 있다는 긴수염대벌레까지, 40종이 넘는 곤충들의 다채로운 구애 방법과 짝짓기 전략을 아울렀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세밀화를 넣어 곤충과 생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한국전쟁의 기원 1·2-1·2-2(총 3권)

브루스 커밍스 지음·김범 옮김·글항아리 발행

미국 학자가 한국전쟁을 최초로 방대하게 다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책. 한때 한국에선 금서로 꼽혔다. 1권에서는 1945~1947년의 해방과 분단체제의 출현을 다룬다. 2권은 1950년까지의 미국 세계 정책과 소련, 중국의 움직임 등 국제 정세를 중심으로 한반도 상황을 살펴본다. 1990년 미국에서 출간된 2권은 처음 완역됐다.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총 7권)

최우리 외 지음·철수와영희 외 9개 출판사 발행

국내 열 개 출판사가 공동 기획으로 전태일 열사의 '풀빵 정신'을 기리며 인문, 사회, 과학 교양 도서를 시리즈로 출간했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꾸릴 수 있는 교양서로 구성돼 있다. 현재까지 기후 위기, 인권 침해, 신냉전, 연애와 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7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혜미 기자
문이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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