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킬러문항이 없어지면 물수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수험생들은 조금 어려운 수능이라고 느끼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킬러문항을 없애면서 난이도를 유지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학시험은 교육과정의 범위 내에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교육평가는 형성평가와 총괄평가로 나눌 수 있고, 한편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로 구분할 수 있다. 학교 교육의 과정에서는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성취기준에 따른 형성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대학입시는 총괄평가와 상대평가를 해야 한다. 대학의 선발 과정에서는 응시자의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높고, 어릴 때부터 교육열을 발휘하고 있다. 유아기부터 자녀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학교에 입학하면서 가계 수입의 상당 비율을 사교육비로 투자하고 있다. 학교급에 따라 사교육의 양상이 다르지만 고가의 사교육은 대부분 상급학교의 교육내용에 대한 선행학습을 위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행학습은 교육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혹시 다른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서 불안감에 함께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고츠키라는 학자는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이론에서 누구나 잠재력을 갖고 있고, 교육은 개인별 학습을 통해 잠재력을 발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근접발달영역은 아이가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활동과 어른이나 더 능숙한 또래의 도움을 받아 수행할 수 있는 활동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도움을 받으면 해낼 수 있는 영역은 사회적 맥락에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아이들은 선생님, 부모, 또래 등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역량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근접발달영역 이론은 교육에서 '학습의 최적 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이가 자신의 근접발달영역에서 학습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발달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현재 수준과 너무 차이가 큰 고차원적 내용을 학습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학습에 대한 흥미와 동기를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도한 선행학습은 가계 경제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아이의 학습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아이의 수준에 맞고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적기교육(適期敎育)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4학년도 수능시험은 공교육과 학생의 학습 방향을 보여준 시금석이다. 국어, 수학 등에서 난이도가 높은 문항이 출제되었는데 기본 원리와 개념, 창의적이고 융합적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정답을 맞혔다. 단기간에 학원의 문제풀이 기술을 배워서 풀 수 있는 문항은 앞으로도 출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독서와 경험을 하고, 학교 교육의 과정에서 성실하게 공부한 자기주도적인 학생이 우수한 학습자로 인정받는 평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학교 교육이 바로 서고, 미래 사회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