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러 왔다가 성매매 내몰린 필리핀 여성, 한국 정부가 2차 가해"

입력
2023.11.26 18:42
유엔 "피해자들 '인신매매 당했다' 증언에도
경찰 조사 없어... 출입국사무소·법원도 방치"
피해자 완전 배상·인신매매 단속 강화 권고

한국 정부가 공연을 위해 입국했다가 성매매에 내몰린 필리핀 여성들을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만 분류해 피해 사실을 조사하지 않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했다는 유엔의 지적이 나왔다. 유엔은 "피해자에게 완전한 배상을 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26일(현지시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따르면, 필리핀 여성 3명은 2014년 유흥시설에서의 공연이 가능한 'E-6-2'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서울의 한 클럽에 고용된 이들은 공연이 아닌 성매매에 강제로 투입됐다. 고용주는 이들의 여권을 압수하고 감금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폭력도 행사했다.

피해자들은 2015년 3월 서울경찰청이 클럽을 단속하면서 체포됐다. 여성들은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밝혔지만 경찰은 성매매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도 성폭력 피해 및 인권 침해 여부를 묻지 않았다. 여성들은 40일간 구금된 뒤 출국 명령을 받았다. 외국으로 추방되면 한국의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소송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즉각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2017년 기각됐다. 서울고등법원, 대법원도 2018년 이들의 항고를 각하했다. 피해자들은 국내 구제 절차를 모두 소진한 뒤 유엔에 진정을 제기했다.

CEDAW 조사 담당 위원인 코린 데크마이어 베르뮐렌은 "한국의 경찰, 법원 등은 (성별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인신매매 피해자를 식별하지 못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사법 접근권을 거부당하며 2차 피해도 입었다"고 지적했다. CEDAW는 한국 정부를 향해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인신매매에 악용되는 E-6-2 비자 제도 개정 △외국인 여성을 채용하는 유흥업소에 대한 감독 △인신매매 가해자에 대한 수사 및 처벌 강화 등을 권고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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