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총파업으로 응수하며 빚어진 2020년 의정 갈등. 당시 상황에 정통한 고위 관료에게 듣기로는, 그해 9월 4일 의대 증원 논의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안정된 이후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내용으로 의협이 정부 ·여당과 갈등 수습 합의를 했을 때 그 이면에는 당정의 수가(정부가 정하는 의료서비스 가격) 인상 협의 약속이 있었다고 한다. 의협은 개원의가 주축이라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수입과 직결되는 수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의정 간 물밑 협상에 찬물을 끼얹은 건 전공의들이었다. 의협 산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중심으로 2020년 8월 의료계 총파업 국면에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이들은, 의협 지도부가 사전 협의도 없이 당정과 타협했다고 반발하며 파업 중단 요청을 거부했다. 의대 본과생들이 정부가 9월 8일로 한 차례 연기한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재차 거부하고 대정부 투쟁에 동조하면서, 이후 의정 협상은 전공의 달래기와 미응시 의대생 구제가 현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전협이 의협의 타협 결정에 반기를 든 이유는 핵심 요구사항이던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이 뒷전에 밀렸다는 불만 때문이었다고 한다.
요컨대 이해관계 측면에서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는 아닌' 셈이다. 3년간 봉인해둔 의대 정원 확대를 정부가 다시 추진하고 나선 지금, 의사계 내부 균열선은 한층 복잡해져 더는 단일대오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다.
병원단체는 정부의 우군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의사 증원 정책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협의 핵심 구성원이 자영업자(개원의)라면, 중대형 병원은 전문의를 고용해야 하는 고용주 입장이다.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잠식하고 있는 의사 부족 문제가 의사 희소가치 상승보다 구인난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달 8일 정부와의 간담회에서 병원단체들은 "의사 부족 현상이 전체 진료과목, 수도권 대학병원까지 확산하고 있다"(오주형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고 호소했고, 정부는 보건복지부 장차관에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까지 총출동해 경청하는 성의를 보였다.
전국 40개 의대는 정부의 수요조사에 '입학정원을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릴 수 있다'고 화답하며 보다 분명히 정부에 동조했다. 의대는 자교 대학병원에 전공의·수련의를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할 임무가 있다. 특히 수도권에 대형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정원이 50명 미만인 일부 '미니 의대'에는 18년째 3,058명으로 묶인 의대 총정원이 당장 벗어던지고 싶은 족쇄일 것이다. 또한 의대는 성적 최상위권 신입생 영입을 보장하는 대학 간판학과이기도 하다. 일부의 관측대로, 의대 교수들의 난색을 못 본 체하고 총장이 의대 정원을 한껏 부풀려 정부에 요청한 대학도 있을 법한 상황이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워낙 큰 데다가 의사계가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표출하고 있는 '덕분'에, 정부는 의협과 협상테이블(의료현안협의체)을 차려놓고도 장외에서 의대 정원 대폭 증원이 불가피하다며 공세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파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3년 전과 달리, 지금은 5개월도 채 안 남은 총선 앞에 정국이 여론 동향에 극도로 민감한 점도 의협에 불리한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