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위안부 항소심 패소에 강한 반발... "한국 정부가 시정하라"

입력
2023.11.23 22:36
주일 한국대사 초치하고
"한국 정부에 시정 촉구"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 소송에서 23일 승소한 데 대해 일본 정부는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의 오카노 마사타카 사무차관은 이날 판결 소식이 전해진 뒤 윤 대사를 초치해 "판결은 극히 유감"이라며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외무성에 따르면 오카노 사무차관은 주권 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 법원이 판결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로서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한국 정부가 강구하도록 요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장관 명의의 담화문도 발표했다. 가미카와 장관은 담화에서 "이 판결은 국제법 및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한국에) 국가로서 스스로의 책임으로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소송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소송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무시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2021년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을 때도 항소하지 않았다. 모테기 도시미쓰 당시 일본 외무장관은 이 판결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며, "한국 정부가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남관표 당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 부활 등 빠르게 진행돼 온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은 이번 판결로 암초를 만났다.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는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로선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해 강경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양국 관계가 다시 어려운 국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을 한국 재단이 대신 변제한다는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징용) 판결 해법도 일부 원고들의 거부로 완전히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원은 12차례에 걸쳐 원고들에게 판결금 수령을 강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위안부 항소심 판결이 나옴에 따라, 양국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추진 동력은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2018년 강제동원 확정 판결처럼 심각한 양국 관계 경색을 부르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제동원 판결은 일본 기업이 피고여서 한국 내 자산 압류에 대한 실질적 압박이 있었지만, 위안부 소송의 피고는 일본 정부여서 자산 압류 등을 통한 배상을 강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일본 정부의 외교공관 건물 등은 외교관계 관련 국제법인 비엔나 협약에 따라 매각을 강제할 수 없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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