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성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중지했던 모든 군사적 조치를 회복하고 군사분계선에 보다 강력한 무기들을 전진 배치하겠다고 23일 협박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우리 군이 9·19 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효력을 정지시킨 뒤 대북 정찰을 재개하자 곧바로 합의 전체를 사실상 파기해 내동댕이친 것이다. 북한은 22일 밤 반발 성격의 탄도미사일도 쐈다.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하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행위를 북한은 당장 멈춰야 한다.
지상과 해상, 공중의 설정된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먼저 위반한 건 북한이다. 합의 1년여 만인 2019년 포 사격이 금지된 완충수역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쐈다. 2020년 철원 비무장지대에선 우리 군 감시초소(GP)로 사격도 가했다. 지난해엔 정찰용 무인기를 서울 상공까지 보냈다. 그동안 북한의 9·19 합의 위반 건수는 20차례에 육박한다. 9·19 합의를 이미 사문화시키고 빈껍데기로 만든 장본인은 북한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 지도를 배경으로 핵 무력을 강조하고, 지난해에만 70여 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한 것도 넓게 보면 남북 합의 정신 위반이다.
한쪽만 지키고 다른 쪽은 어기기를 반복하는 합의가 지속될 순 없다. 우리가 9·19 합의 중 일부 효력을 정지한 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자구책일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오히려 합의가 깨지는 걸 막기 위해 인내해 온 남한에 충돌과 파기 책임을 떠넘기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남북이 '파기'를 공식 선언하진 않았지만 9·19 합의가 무력화되면서 남북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커졌다. 남북 모두 선을 넘는 맞대응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존폐 기로에 섰지만 9·19 합의 이후 남북 충돌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측면이 없잖다. 한미 동맹으로 북한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을 갖추는 게 우선이나 평화 구축을 위해 정치·외교적 해법까지 포기한다면 이는 성급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