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입력
2023.11.24 15:00
10면
수잔 시마드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흔히 인간은 나무와 같은 식물 세계를 수동적이며 순응적이라 생각해왔다. 뿌리를 한번 내린 곳에 머물며, 이웃한 개체를 돌보거나 치유하지 못한다고. 양육이나 보호 같은 개념은 모성과 출산이라는 개념을 가진 동물에게나 가능한 것이라 봤다. 혈연에 따라 무리를 이루고 서로를 구별하는 것 역시 동물의 특성으로 봤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캐나다의 여성 삼림 과학자 수잔 시마드(63)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산림 생태학 교수는 오랜 연구 끝에 숲에는 나무와 나무, 나무와 숲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이를 통해 탄소와 질소 같은 영양물질과 신경 전달 물질까지 전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모든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수백 년 이상의 오래된 나무인 '어머니 나무'가 있다.

"나무들은 소통하고 제 친족의 균근뿐 아니라 군집 내의 다른 구성원에게 생명의 구성 요소인 탄소를 보낸다. 군집이 온전하게 지켜지도록 돕기 위해서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최고의 요리법을 전수하듯이 나무들도 자손들과 관계를 맺는다. 삶을 계속 살아나가기 위해 그들이 지닌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전달한다."

책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한 삼림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여정을 숲에서 자라며 숲에 모든 것을 투신한 일생과 엮어 집대성한 논픽션이다. 책의 시작은 40여 년 전 저자가 캐나다 서부 지역의 한 벌목 회사에서 최초의 여직원으로 일하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시마드의 집안은 대대로 소박한 규모로 숲에서 나무를 베는 일로 먹고살았는데, 남성 일색의 임업 현장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이해해온 숲과 도통 달랐다. 200년 동안 살던 나무를 벤 조림지에 심은 묘목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말라죽어 있던 것.

'숲은 하나로 연결된 전체야!' 어린 시마드의 목소리가 내면에 울려 퍼졌다. 시마드는 어린 시절부터 주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어야 했던 아이였다. 나무뿌리 아래의 부식토를 열심히 주워 먹으며 맛까지 구별할 수 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건 껍질이 흰 자작나무 밑동의 부식토였다. 풍성한 활엽수가 달콤한 수액을 뿜어내는 데다, 매년 가을 양분이 가득한 잎을 가득 떨구기에 더 진하고 맛도 좋았다고 회상한다. 자연스레 숲의 토대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토양을 구성하는 뿌리, 광물과 암석, 진균, 벌레, 지렁이, 그리고 흙과 개천과 나무 사이에서 흐르는 물과 양분, 탄소...

묘목을 살릴 방안을 고심하던 그는 나무가 흙에서 영양을 얻으려면 진균(眞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히 트러플 버섯을 따다가 미송 뿌리 끝과 버섯을 진균 실이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다. 집에 돌아와 버섯 책을 읽으며 알게 된다. '균근균. 식물과 사활을 건 소통 관계를 구축한다. 이와 같은 동반자 관계에 진입하지 않고서는 진균도 식물도 생존할 수 없다.'

20대의 어린 시마드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이 발견이 향후 앞으로 자신의 필생의 연구 주제로 삼을 '어머니 나무'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그는 이후 잡초목 제거 효과를 조사하는 산림청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하고, 상사의 조언으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오리나무의 공생 세균을 연구한다. 그리고 2002년 대학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지금 몸담고 있는 대학의 영년직 교수가 된다. 여러 차례 일자리를 바꾸면서도 그가 올곧게 믿은 신념은 이것이다. 숲은 여러 나무의 모음 그 이상이며, 모든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이를 구성하는 원리는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고.

책은 그의 성공한 커리어패스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각 단계마다 남성 중심의 현장과 동떨어진 관행과 주장에 맞서 그가 구축해온 새로운 이론을 촘촘히 교차하며 보여준다. 숲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가 '경쟁'이라는 반대론자의 비아냥거림, 악의적인 언론보도, 살던 곳과 먼 대학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견뎌야 했던 9시간의 통근길의 외로움, 파경에 이른 결혼 생활, 그리고 유방암 투병까지 삶의 굴곡과 고민을 온전히 담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교감하고 발견해낸 숲과 나무에 관한 사실을 조화롭게 직조해낸다. 40년 동안의 여정을 온전히 담은 576쪽의 두꺼운 책을 넘기다 보면 지금 읽고 있는 것이 한 개인의 회고록인지, 나무를 주제로 한 연구의 총괄 보고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의 연구의 근간이 된 성취의 시작은 1997년 '네이처'에 실린 삼림 생명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나무의 연결성과 소통에 관한 논문에서부터였다. 숲에서 오래된 나무들은 소통 허브가 되고, 작은 나무는 노드가 되어 숲 전체의 성장과 재생을 관리한다는 내용을 두고 네이처는 '월드 와이드 웹'이 아닌 '우드 와이드 웹'이라는 표현을 썼다. 2015년, 그는 다가올 300년 동안의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머니 나무를 모두 절단하는 대신 보존하면 탄소 저장량, 생물 다양성, 삼림 재생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내용이다.

경이로운 자연으로 이끄는 서문의 마지막 두 문장이,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가장 적확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나무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나무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