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성범죄 피의자

입력
2023.11.22 17:3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는 공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 조항까지 운영규정에 포함시킨 이유다. 성범죄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돼 조사를 받고 있는 선수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떠나 대표팀에서 하차하는 게 상식이다. 경우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은 채 경기에 출전했고 감독은 그를 감쌌다. 21일 밤 중국에서 열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중국과의 경기에서 16번을 달고 뛴 황의조 얘기다.

□ 난적 중국을 3대 0으로 이겼다. 의미를 부여할 만한 승리지만 되레 욕만 먹고 있다. 2대 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 27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황의조를 교체 투입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그를 성관계 불법촬영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8일 경찰 조사를 받은 황의조는 지난 6월 사생활 폭로 사실이 알려지자, 자신은 협박을 받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연인 측에서 ‘영상 촬영에 동의한 적 없고, 삭제를 요구한 이후에도 불법 촬영이 반복됐다’고 주장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 거액을 받고 성적을 내야 하는 외국인 감독이 "당장 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황의조를 감싼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축구협회의 무신경한 행정이다. 이미 축구협회는 지난 3월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7월에는 인종차별 발언 선수 솜방망이 징계로 낮은 윤리의식을 드러냈다. 이런 협회에 성인지 감수성까지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 최고의 리그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축구 선수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실력에 비례한 품성까지 갖춰야 한다. 개개인의 자기 관리가 가장 우선이지만, 축구협회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데뷔 때부터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였던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은 우리나라 최고 우완투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학폭 논란이 명확하게 결론 나지 않은 그를 국가대표팀에 한 차례도 합류시키지 않았다.


김성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