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일본 국대 책임' 가사하라 JOC 부장 인터뷰
"도쿄 올림픽 최대 유산은 승패 떠난 우정"
저변 워낙 탄탄해 조금만 투자해도 괄목 성과
이기흥 체육회장 '해병대 캠프 발언'엔 회의적
코치 아카데미 "운동 기술 대신 경제·정치 교육"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아쉽게 2위를 차지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건 일본 선수에게 폭 안겨 운다. 두 사람은 마음을 다해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했다. 양국의 '빙속 여제'인 이상화(34·은퇴)와 고다이라 나오(37·은퇴) 이야기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두 사람은 각각 은메달과 금메달을 땄다. '극일 정신'으로 무장했던 체육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라이벌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도쿄의 올림픽 뮤지엄 한편에 두 선수의 영상을 온종일 틀었다.
가사하라 겐지 JOC 강화부장은 지난달 17일 도쿄의 JOC 사무실에서 가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에선 과거 고다이라와 이상화처럼 승패를 떠나 우정을 보여준 선수들이 많았다"며 "이것이 올림픽이 일본 사회에 남긴 진짜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 어린이들이 스포츠의 위대함을 느꼈고, 운동을 더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본 스포츠계가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가사하라 부장은 일본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책임진 인물이다.
"'팀 재팬', 파리 올림픽에서도 선전할 것"
가사하라 부장은 최근 만개한 일본 스포츠의 저력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봤다.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 3위(금 27·은 14·동 17)를 차지한 데 이어, '안방 이점'이 사라지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선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은 생활 스포츠 강국이지만 최근엔 엘리트 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가사하라 부장은 "경기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보통 10년쯤 걸린다. 일본은 2008년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국립 선수촌) 개관이 계기가 됐다"면서 "폭넓은 저변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노력해 세계 수준까지 올라섰기에 호성적이 갑자기 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쓸 수 있는 돈이 늘었다는 점도 든든하다. 가사하라 부장은 "도쿄 올림픽이 끝났어도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증액된) 엘리트 경기력 강화 예산은 깎이지 않았다"고 했다. JOC는 이 돈을 다양한 분야의 코칭 스태프 영입이나 과학적 훈련에 쏟아부어 성과를 냈다. 가사하라 부장은 "엘리트 체육 예산이 늘었다고 해도, 유럽 주요국과 비교하면 (단위에서) 여전히 '0' 하나가 빠진 수준이고, 한국보다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변(유소년 선수)이 워낙 탄탄해 엘리트 스포츠에 조금만 효과적으로 투자해도 성과가 금세 나온다는 의미였다.
"코치들도 돈 들어오는 과정 이해해야"
좋은 지도자를 키우는 건 JOC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가 2010년대 이후 '퀀텀점프'(비약적 도약)한 주된 이유도 코치 역량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JOC의 대표적 코치 연수 프로그램은 내셔널코치아카데미(national coach academy)다. 국가대표급 코치를 키워내는 과정인데 8주간 합숙하며 배운다.
내셔널코치아카데미에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대원칙이 있다. 코치들에게 운동 기술에 대한 조언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사하라 부장은 "코치들이 본인 종목에 대해선 늘 당당하게 말하는데 스포츠 이외의 분야는 잘 모른다"면서 "아카데미에서 경제∙정치∙문화 등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코치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종목을 사회(국민)에서 어떻게 보는지 객관적으로 깨닫고, 스포츠를 둘러싼 정치·경제 구조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예컨대 경제∙산업 분야를 공부하면 종목별 경기력 강화비용이 누구 주머니(정부 또는 기업)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러면 돈 쓰는 방식도 달라진다"고 전했다. 정치의 경우 내년 정치 지형이 어떻게 달라질지 이해하면 스포츠 관련 예산의 증감을 예측해 적절히 대비할 수 있다.
"인구대국 인도 스포츠의 기세에 눈길 …경계해야"
가사하라 부장에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해병대 캠프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 회장은 지난달 8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산 기자회견 당시 "(파리올림픽을 대비해) 나를 포함해 국가대표 전원이 해병대 훈련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해 논란이 있었다.
가사하라 부장은 "일본도 어떻게 선수들의 멘털을 강화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옛날 '극기훈련' 방식으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가사하라 부장은 "1960년대 일본 레슬링협회장이었던 하타 이치로가 선수들에게 동물원의 사자와 눈싸움하거나, 한겨울에 바다수영을 하도록 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요즘에는 그런 정신력 훈련법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한국 스포츠의 저력을 높게 평가하던 가사하라 부장은 "인구대국인 인도의 기세가 눈에 띈다. 일본과 한국이 힘을 합쳐 인도를 경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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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