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주’ 김정은이 ‘파리의 연인’으로 갈증 느낀 이유

입력
2023.11.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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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힘쎈여자 강남순'의 황금주 역 배우 김정은
"'백마 탄 왕자' 기다리는 캔디 아닌 황금주, 카타르시스"

"애기야, 가자!"

20여 년간 입에 오르내려 온 이 명대사를 낳은 SBS '파리의 연인'(2004)은 배우 김정은(49)을 명실공히 로맨틱 코미디 퀸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당시 20대였던 김정은은 기쁨과 함께 남 모를 갈증을 느꼈다. "여성 캐릭터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백마 탄 왕자'에 의해 선택되어지잖아요.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밖에 못 쓰이나' 목 마르더라고요."

JTBC '힘쎈여자 강남순'(이하 '강남순')은 "여성이 (스토리상) 곁다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기다려온 김정은이 "카타르시스를 느낀" 드라마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연기한 강남순(이유미)의 엄마 황금주는 힘이 세고 돈이 많다. 게다가 '강남순'은 강남순과 그의 엄마 황금주, 그의 할머니 길중간(김해숙) 세 모녀의 이야기였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은은 "출연 제안을 받고 세 모녀가 만나는 장면을 대본에서 본 순간, '이건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어 '무조건 할게요'를 외쳤다"고 돌아봤다.

황금주는 역대 여성 캐릭터 중 가장 파격적이다. 가죽 슈트를 입고 오토바이를 즐겨 타며, 괴력을 발휘하는 것도 모자라 자수성가해 번 어마어마한 돈으로 문제를 척척 해결한다. 그는 "황금주가 너무 좋다"면서 "마음 한 구석이 여린 것도, 중요한 순간마다 삐끗하는 B급 감성마저도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배우 김정은의 주특기인 코미디 연기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가문의 영광' 등 2000년대 초반 코미디 영화로 크게 주목받았다. "어릴 땐 '코미디가 네 전공이야'란 말이 칭찬인 줄도 모르고 '다른 것도 잘 하는데요'라며 발끈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이제 "나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30대를 지난 뒤 결혼 이후 일과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됐다는 그는 "좋은 드라마를 보면 피가 끓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극 중 황금주의 엄마인 길중간이 "늙으면 심장이 안 뛴다고? 가슴이 처지지 심장이 처지니?"라고 반문한 대목을 거론하며, "심장이 처지는 건 정말 아니더라"고 말했다.

어느덧 데뷔 27년차를 맞은 김정은은 인터뷰 동안 "'올드'해 보이면 안 되는데"란 걱정을 자주 내비쳤다. 그래서 3년 만의 복귀작이던 '강남순' 현장에서 감독의 디렉팅이나 젊은 스태프들의 피드백을 최대한 받아들이려 했다. 김정은은 "일부러 편집실에 자주 놀러 가 모니터링도 하면서 황금주가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26일 종영한 '강남순'은 판타지 코믹물이지만, 힐링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거악과 맞서 이기는 '정의'를 보여주는 세 모녀의 이야기가 통쾌해서다. 김정은 역시 "'강남순'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이유는 각자 삶이 퍽퍽해서가 아닐까 싶다"면서 "잠시나마 위로받으셨으리라 생각했고, 작품으로 나 역시 위로받았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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