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중년 여성 림메이화(홍휘팡)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산다. 여진구 열성 팬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을 여행하고 싶던 그는 마침내 서울을 찾는다. 하지만 관광객 일행과 떨어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모험을 하게 된다. 관광가이드의 안내와 관광코스를 벗어나 한국의 진면모를 보게 되고 마음이 한 뼘쯤 성장한다. 영화 ‘아줌마’는 림메이화를 통해 인생의 분수령에 선 중년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따스하게 그려낸다. 싱가포르 허슈밍(38)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국내 개봉(22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허 감독을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허 감독은 2015년에 ‘아줌마’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팬이었던 어머니가 영감을 줬다. 할리우드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연출 공부를 할 때였다. 허 감독은 “미국에서 화상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주변 사람 근황을 말하듯 한국 드라마 내용을 전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국 드라마를 3, 4편 정도 볼 정도로 푹 빠졌다”며 “드라마는 어머니에게 위안을 주는 탈출구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 감독은 “어머니가 누나랑 한국을 처음 방문하시고 난 후 집에 가보니 식기가 모두 한국 걸로 바뀌어 있었다”며 “어머니가 한국을 사랑하시는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 감독은 2015년 한국 여행에 나섰다. 난생처음이었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아줌마’가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돼 받은 상금이 여행비가 됐다. 그는 단체관광객들 사이에 끼어 다녔다. 그는 “남자는 저 혼자였고 마치 영화 속 림메이화 같은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아줌마’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합작영화다. 신인감독으로서는 타국에서 외국 배우와 촬영하는 일이 더 버거웠을 만하다. 소재 변경을 고민해 봤을 만도 한데 허 감독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한국 드라마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한국에 간다는 설정이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다. 허 감독은 “진정성을 담아내기 위해 한국에 대해 많이 연구했고 좋은 각본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지난해 중국어권 최고 영화상인 금마장 시상식에 신인감독상과 각본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정동환) 후보에 올랐다.
영화의 초기 제목은 싱가포르에서 아줌마를 지칭하는 ‘언티(Auntie)였으나 곧 ‘아줌마’로 바꿨다. 그는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조금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데, 저는 아줌마가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아줌마’의 중국어 제목은 ‘꽃길 아줌마’다. 허 감독은 어머니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를 미리 만들어 제작비 조달에 나섰다고 한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 보여준 포스터에는 호탕하게 웃는 어머니 사진 위로 ‘아줌마’라는 한글이 커다랗게 들어가 있었다.
영화에서 곤경에 처한 림메이화를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가 도와준다. 허 감독은 “‘아저씨’를 누가 연기할까 고민했을 때 정동환 배우는 후보 명단 상단에 위치했던 분”이라며 “캐릭터를 분석하고 깊이를 더하는 부분에서 그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다니던 싱가포르 학교에서 정동환 배우가 출연한 연극 ‘레이디 맥베스’ 공연을 본 적이 있다”며 “당시는 그분을 몰랐는데 돌아보니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두기도 했다.
허 감독은 한국 제작진과 일을 같이 하며 한국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는 “한국 제작자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 겁을 내지 않는다”며 “검열이 조금 있는 싱가포르에선 누군가 기분 나빠할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