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숨진 자녀를 대신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처분에 이의를 제기한 학부모를 두고 관할 교육지원청이 "청구 자격이 없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만큼 부모가 재심을 청구해도 얻을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학폭 사망 사건의 경우 사후에라도 권리를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최근 양천구 소재 한 고교에 다니던 A군 부모가 제기한 '학폭위 처분 취소' 행정심판에서 "청구인 적격이 존재하지 않아 각하돼야 한다"는 답변을 서울시교육청 행정심판위에 제출했다. "피해학생 보호자도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유족 측 반박에도 교육지원청은 재차 "자격을 인정할 실익이 없다"고 되받았다.
지난해 11월 이 학교 2학년 A군은 자택에서 투신 사망한 채 발견됐다. 자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부모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아들이 학폭에 시달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학교 측에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이듬해 2월 받아 본 학폭위 결정문에는 가해 추정 학생 6명에게 '조치 없음' 처분을 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A군 부모는 즉각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조치에 이의가 있는 피해학생 또는 보호자는 처분을 알게 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학교폭력예방법(제17조의 2)에 근거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서도 올해 5월 행정심판위에 제출했다.
경찰 판단은 학폭위와 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9월 학폭위에 부쳐진 6명 중 4명을 포함해 총 8명을 A군에 대한 공동강요 및 공동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A군 사망 전날 가해학생들이 그를 불러내 폭언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은 학폭위가 부실 운영됐다는 의혹 역시 지난달 서울교육청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학폭 정황이 뚜렷하다는 수사 결과에도 교육당국은 학폭위 처분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후속 절차조차 필요 없다고 본 것이다. 교육지원청 측은 보충서면 의견서에서 설령 처분 결과가 달라진다 한들, A군은 이미 숨져 보호조치가 이뤄질 수 없고 부모에게 돌아갈 이득도 없다고 주장했다.
A군 유족은 당국의 법리 해석이 학폭법 취지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행정처분의 불복절차에서 제3자의 자격 요건을 따져야 하는 건 맞지만, 학폭법상 학폭위는 행정심판의 주체로 보호자를 함께 규정하고 있어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지원청이 유족에게 보낸 결정문에도 "보호자는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안내돼 있다.
교육당국 주장대로 청구가 각하되면 학폭 피해자 권리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유족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대건의 이지헌 변호사는 "진상규명 책임이 있는 교육청이 심판을 회피할 경우 사망 등 심각한 가해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학폭위 처분은 오히려 구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수 변호사는 "학폭법 목적에는 가해학생 선도도 포함돼 있어 피해자 부모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