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더 유명한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 한니발 렉터는 범죄스릴러 소설 역사상 가장 섬뜩하고 악명 높은 캐릭터라 할 만하다. 빼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식인 살인마인 그는 상대의 심리를 읽고 그 심리를 조정하는 데 능하다. 한마디로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상위 포식자다. 정신분석학자들은 그 캐릭터를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이라 분석하는 모양이다.
자아도취성 인격장애 즉 나르시시즘에 병적으로 도취된 이들은 도저한 우월감과 자기애로 무장한 듯 보이지만, 우월감에 위협을 느낄 경우 자기애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즉 나르시시즘에는 웅덩이에 비친 아름다움(우월감)과 더불어 언제든 웅덩이가 흙탕물로 휘저어질지 모른다는 병적 불안과 열등감이 잠재돼 있다. 두 측면 모두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 한니발 렉터처럼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 프랑스 유학생 사가와 잇세이(佐川一政, 1949.4.26~2022.11.24) 역시 자아도취성 인격장애 성향을 지닌 범죄자였다. 잇세이는 1981년 프랑스 소르본대학 유학 중 급우였던 네덜란드 여성을 자기 집에 초대, 총으로 살해한 뒤 강간하고 시신 일부를 요리해 먹었다. 그는 나머지 시신을 인근 공원 연못에 유기하려다 발각되면서 범행 나흘 만에 체포됐지만 재판에서 심신상실 판정을 받고 소 취하와 함께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약 2년 뒤 일본으로 강제 추방돼 도쿄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86년 8월 자진 퇴원했다.
그는 책과 인터뷰 등을 통해 범행 전모와 자신의 엽기적인 충동 등을 과시하듯 떠벌렸고 성도착적 내용의 포르노물에 출연하기도 했다. 신장 144.8㎝의 왜소한 체구에 스스로 추남이라 여겼다는 그는 큰 키에 멋진 피해자의 살을 먹음으로써 좋은 에너지를 흡수하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