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그레이(Gray) 총선'이 될 참이다. 연령별 유권자 수에서 사상 최초로 60대 이상(6070세대)이 30대 이하(2030세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만 고령 인구의 증가에 따른 노인의 정치세력화(Gray Power)가 보수와 진보 정당 어느 쪽에 더 유리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여야가 감안해야 할 선거 변수가 하나 더 늘었다.
21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올 10월 31일 기준 40~59세는 1,660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어 60세 이상 1,390만여 명, 18~39세 1,373만여 명으로 나타났다. 세대별 유권자 비율로 환산하면 4050세대 37.5%, 6070세대 31.4%, 2030세대 31.1% 순이다. 청년층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에 비춰 선거인 명부가 확정되는 내년 3월에는 6070의 수적 우위가 더 확연해질 전망이다.
이 같은 인구분포는 전례가 없다. 줄곧 30대 이하 유권자가 60대 이상 유권자를 웃돌았다. 지난해 3월 20대 대선에서 2030세대는 32.2%(1,424만여 명)로 6070세대(29.8%·1,312만여 명)보다 112만여 명, 같은 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2030세대가 6070세대보다 98만여 명 많았다.
두 집단의 격차는 계속 좁혀졌다. 2020년 21대 총선의 경우 2030세대는 1,494만여 명으로 1,201만여 명에 그친 6070세대와 인구 차이가 293만여 명(6.7%포인트)에 달했다. 그보다 앞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2030세대 비중이 47%로 6070세대(16.9%)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지난 20년 사이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결과다.
유권자 인구 역전 현상은 각지로 퍼졌다. 21대 총선 당시 17개 시·도 가운데 강원, 전남·북, 경북 등 5개 도에 그쳤지만 22대 총선에서는 부산, 대구, 충남·북, 경남을 포함해 10개 시·도로 확산됐다. 수도권과 대전, 광주, 울산, 세종을 제외한 전국에서 6070 유권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선거에서 6070세대가 2030세대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투표율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표본조사 결과 지난 총선에서 60대 투표율은 80%, 70대 투표율은 78.5%로 전체 투표율(66.2%)을 크게 넘어섰다. 반면 2030세대는 60%를 밑돌아(20대 58.7%, 30대 57.1%) 차이가 컸다.
이번 총선에서 달라진 연령대별 인구 분포에 지난 총선의 투표율을 적용하면 6070세대의 영향력은 더 커진다. 6070의 비중은 전체 유권자의 31.4%이지만, 전체 투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6.5%로 늘어난다. 4050세대(37.0%)에 육박한다. 반면 2030세대 투표자는 26.5%에 그쳤다. 2030의 인구 비중(31.1%)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이처럼 내년 선거는 그레이 총선의 경향성이 뚜렷하다. 문제는 바뀐 유권자 분포가 정치적으로 어느 진영에 유리할 것인지다. 전문가들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이가 선거에 미치는 다양한 효과가 중첩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연령효과(aging effect)'가 작동한다. 젊은 유권자는 진보, 나이 든 유권자는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에 따르면 6070세대가 2030세대보다 많을수록 보수정당에 유리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세대효과(cohort effect)'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한 세대의 특수한 사회화 경험으로 형성된 정치적 성향을 의미한다. '86세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청년시절 민주화 운동을 거쳐 중·장년기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선 경험을 공유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을 굳건하게 지지해왔다. 50대를 지나 점차 60대에 접어들고 있다. 정치적으로 60대가 예전의 60대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박경미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0대를 기준으로 세대효과는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연령이 높아지면 보수화된다는 명제는 유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50대가 나이가 들면서 보수정당 지지로 쏠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달부터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서 60대와 70세 이상을 구분해 등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6070세대의 정치성향이 서로 달라 한데 묶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2030세대가 뒷전으로 밀리는 건 아니다. 지난 대선처럼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6070세대가 양쪽으로 나뉜 상황에서 2030의 표심이 선거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젠더 이슈로 요동치는 2030세대의 투표 성향도 변수다.
'MZ세대 한국생각'의 저자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30세대 여성의 민주당 결집 강도와 남성의 국민의힘 결집 강도에서 승부가 날 것 같다"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관련된 여권의 내홍이 승부의 예민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 대표와 갈등 국면에서 이탈한 2030세대 남성 유권자의 마음을 다시 얻지 못하면 여당은 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정책 측면에서는 여야 모두 2030세대보다 비중이 더 커진 6070세대를 겨냥한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연히 연금 개혁, 정년 연장 등 세대간 이해관계가 첨예할 수 있는 과제가 부각되고 청년보다 노년층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연금 개혁 논의가 헛도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는 "세대갈등 성격의 의제뿐만 아니라 저출생, 주거,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서 '그레이 보터(Gray Voter·노년 투표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2030세대의 정치적 효능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정치권의 청년 담론이 사회적 이슈로 확대 재생산하지 못하고 소비에 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고령화 추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청년 유권자나 소수자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요구가 늘어날 것"이라며 "변화가 더디면 세대간·집단간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