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T1'과 중국의 '웨이보 게이밍'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린 19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고척돔) 안팎은 국적과 세대가 허물어진 공간이었다. 이날 딸 윤빛나(19)씨와 함께 고척돔을 찾은 박서미(49)씨는 게임 캐릭터 분장(코스프레)을 한 모델들과 기념 사진을 찍어가며 세계 최대 게임 축제를 즐겼다. 박씨는 "딸이 롤을 워낙 좋아해 함께 즐기고 싶어 11만 원짜리 티켓 두 장을 구매해 결승전을 찾았다"며 "대회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활기 넘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T1 우승을 위해 응원하겠다"고 했다.
올해 '롤드컵(대회를 월드컵에 빗댄 표현)'은 '페이커' 이상혁(27)이 소속된 T1이 결승에 오른데다 한국과 중국의 맞대결 구도가 완성되며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을 기록했다. 팬들은 경기 시작 다섯 시간 전인 낮 12시에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최대 게임 축제의 마지막을 즐겼다.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로 분장한 이들은 물론 '티모' 캐릭터 모자를 쓰고 대회를 즐기는 이들로 대회장은 들썩였다.
국내 팬들은 물론 웨이보 게이밍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도 경기장 주변 곳곳에서 응원전을 펼쳤다.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는 웨이보 게이밍 팬 장모(26)씨는 "웨이보의 첫 경기를 앞둔 지난달 18일 한국에 와 부산을 오가며 여러 경기를 봤다"며 "결승에선 웨이보가 (T1을) 3대2 또는 3대 1로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경기에는 1만8,000여 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지난 8월 판매 개시 직후 약 10분 만에 티켓은 다 팔리며 높은 인기를 실감했다. 거리 응원이 펼쳐진 광화문광장에도 오전부터 인파가 몰렸고, 경기 시작을 앞두고 수용한도 인원인 5,000명이 모두 들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롤드컵을 보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는 미국인 로라(26)와 존(25)은 오전 10시가 채 되기도 전에 광장을 찾아 결승 분위기를 즐겼다. T1의 페이커를 응원한다는 로라는 "e스포츠 문화의 열기는 미국보다 한국이 뜨거운 것 같다"며 "롤드컵을 보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일주일 동안 광화문과 남이섬 등 여러 관광지를 찾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고척돔과 광화문광장을 찾은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경기 전후로 질서와 안전 수칙을 유지하며 성숙한 관람 문화를 선보였지만 옥에 티도 있었다. 오후 5시에 시작될 예정이던 결승전 공식 행사는 관람객 입장이 수월하지 않았던 탓에 약 30분 지연 시작됐다.
경기 시작 직전 롤드컵 테마 곡 'GODS'를 부른 인기 그룹 뉴진스가 등장했을 때는 1층(플로어석) 상당수 관람객이 통로로 뛰쳐나와 사진을 촬영해 관중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한 달 넘게 진행된 올해 대회의 '흥행 대박'으로 대회와 구단들을 후원한 기업들도 함박웃음을 짓는다. 특히 대회 후원사이자, 결승에 진출한 T1 후원사이기도 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그동안 후원한 후광 효과를 톡톡히 거둔 모습이다.
T1선수단 어깨에 박힌 벤츠 로고가 미디어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데다 우승 트로피 '소환사의 컵'을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EQS SUV로 옮겨 전달하는 장면이 월평균 1억 명이 넘는 전 세계 롤 팬들의 집중도가 극대화되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e스포츠 마케팅이 미래 잠재적 고객으로 꼽히는 10~30대에 다가설 수 있는 수단으로 최적화됐다고 보고 있다"며 "현대차가 국내 e스포츠팀 'Gen.G(젠지)'와 협업을 꾸준히 강화하고 기아가 2021년부터 '디플러스 기아'팀을 후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