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869원까지 떨어졌어." "한국보다 얼마나 싼 거야. 나 카디건이랑 신발도 살래."
12일 오전 10시 고가 브랜드가 즐비한 일본 오사카 신사이바시 한가운데에 있는 꼼데가르송 매장 앞. 오사카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어가 또렷하게 들렸다. 개장까지 1시간 남은 시각.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 손님 11명 중 1번 대기자 등 7명이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매장 직원 미무라 사라사는 "주말 손님 절반은 한국인"이라며 "원래 대만, 중국 관광객이 많았는데 요새는 한국 관광객이 개장, 물건 입점 시간에 찾아와 싹 쓸어 간다"고 말했다.
약 100m 떨어진 루이뷔통 매장 앞도 개장을 앞두고 한국인들로 붐볐다. 오픈런을 기다리는 40여 명 중 맨 앞에 선 사람을 포함해 대다수가 연신 제품 가격, 원·엔 환율을 비교하면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9시부터 줄을 섰다는 박효진(36)씨는 "지금 엔저라 일본에서 명품을 사야 '핵이득'"이라며 "셀린느는 일본이 15%가량 싸고 지갑이나 스카프, 액세서리류 물량도 많다"며 핵이득 제품들을 추천해 주기까지 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규모는 숫자로 증명된다. 일본 관광국(JNTO)에 따르면 올해 1~10월 외국인 관광객 1,989만1,100명 중 한국인이 552만5,900명으로 가장 많다. 3.6명 중 1명꼴이다. 한·일 관계 개선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엔저가 한국인의 일본행을 늘리고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원화로 일본에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일본 관광 관련 소비 총액은 1조3,904억 엔(약 12조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관광과 내수만 따지면 일본을 한국인이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게 '빈말'이 아닌 셈이다.
오사카에서 한국인 관광객은 명품 매장부터 저가 상점인 '100엔 숍'까지 휩쓸고 있다. 한신백화점과 한큐백화점은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아예 외국인 관광객만 쓸 수 있는 '5% 할인 쿠폰'을 나눠주고 있다. 면세와 별도로 횟수 제한 없이 5%를 깎아주는 쿠폰이다.
요시다 포터 가방, 사케 등이 담긴 쇼핑백을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이성한(30)씨는 "엔저, 면세, 5% 할인까지 더하면, 관세를 다 내고 귀국해도 한국보다 훨씬 싸다"며 "비행깃값을(본전을)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에 오직 백화점 쇼핑만을 위해 일본에 오는 한국 손님도 있다(한신백화점 면세카운터 직원)"는 목격담도 나왔다.
잡화점 '돈키호테'는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식품 대부분이 매진이었다. 직원 이노우에는 "한국 손님이 제일 많고, 가장 많이 사간다"며 "녹차 킷캣, 폼 클렌징, 파스가 잘 나간다. 아예 박스째 사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축구용품 판매점 '사커숍 카모'는 이강인·손흥민 선수 유니폼만 다 팔려 그 자리만 텅 비어 있었다.
오사카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은 '역대급 엔저'를 두고 반갑다고 웃었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달가운 현상만은 아니다. 여행수지 적자를 심화시켜 '경제 종합 성적표'인 경상수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9월 누적 여행수지는 93억7,160만 달러(약 12조3,302억 원) 적자였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쓰는 돈보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지출한 금액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내국인의 일본 등 해외 여행 급증 영향으로 여행수지 등 서비스수지 적자가 심화할 것"이라며 "서비스수지 적자 확대는 전체 경상수지 악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간사이 공항 긴 대기줄에서 들뜬 목소리가 귀를 당겼다. "제주보다 일본이 더 싸. 다음 주말에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