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원료 공급 업체를 단속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마자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 기관에 대한 제재를 풀었다.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미중 정상회담 하루 만인 16일(현지시간) 중국 공안부의 과학수사연구소를 수출 통제 명단에서 뺐다고 관보를 통해 밝혔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 결정은 중국과 협력해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2020년 5월 미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과학수사연구소를 수출 통제 명단에 올렸다. 중국은 펜타닐 통제에 필수적인 과학수사연구소를 제재 대상에 넣고 중국에 펜타닐 단속 협력을 기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미국의 골칫거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P)에 따르면 미국에서 펜타닐 등 합성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에 따른 사망자가 하루 150명이 넘는다. 18~49세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과다 복용이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펜타닐은 대개 멕시코에서 만들어져 불법 유입되는데 미국 정부는 원료 생산지로 중국을 지목했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중국과의 펜타닐 공조는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로 꼽힌다.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맨 먼저 소개했을 정도다. 그는 “시 주석의 의지에 감사하다”고까지 했다. 패트리샤 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한국일보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유권자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 성과”라고 말했다.
문제는 합의가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회담 전에 펜타닐 원료 단속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료 제조업체들이 규제 회피 방법을 알아내고 시장에 곧 복귀할 것을 미국 당국자들이 걱정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걸림돌이다. 릴리 맥엘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 연구 석좌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는데, 특히 악명 높은 게 불법 마약 거래 억제 관련 비협조”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회견에서 “(중국의 약속을) 신뢰하지만 검증할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