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을 공부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입력
2023.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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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지정학의 중요성
온라인시대 더 중요해진 '지리 전략'
'우문현답' 되새겨 지정학 공부해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국제정치 및 남북관계를 열공하셨다. 남미 국가인 칠레의 국내 정세 이야기가 나왔으나 교수 전문가 10여 명 중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이 칠레를 가봤다며 현장 방문 경험을 이야기하셔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됐다. 회의 후에 현대건설 CEO와 대한수영연맹 회장 등을 하시면서 전 세계 60개국을 방문했다고 언급하셨다.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교수나 외교관들도 20~30개국 방문이 최고 수준이었다.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역임한 필자도 35개국에 그쳤다. 이 전 대통령의 글로벌 감각은 역시 수많은 현장을 방문한 결과였다. 특히 중동의 이라크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건설 현장을 지킨 국가는 한국뿐이었다고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철수하더라도 언제든지 복귀가 가능했지만 한국은 한번 떠나면 기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건설 현장 1㎞ 지점에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버텼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의 해외 건설 공사는 위험 감수(risk taking)의 결과다.

최근 들어 글로벌 차원의 전쟁과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0개월이 지나면서 CEO 대상 외부 강연에서 언제 전쟁이 종료될 것인지가 단골 질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가 팔린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셜 영국의 분쟁 전문기자는 2편에서 "신이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두지 않으셨습니까"라는 화두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을 지리로 풀어냈다. 끝없는 밀과 해바라기밭으로 펼쳐진 대평원은 진흙탕이 되는 봄철 해빙기만 아니라면 전차군단으로 공격하면 하루에도 수십 ㎞ 진격이 가능했다. 지난해 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동토(凍土)를 활용하고자 했으나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요청으로 그나마 2월 하순으로 공격을 연기했다. 우크라이나는 3월 하순까지는 질퍽한 황톳길을 활용해 전차 진격을 지연시켰다. 산맥이나 강이 없는 국경선은 국제법에서나 유효하다. 허약한 접경지역은 항상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스트롱맨(strong man)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터졌다. 중동의 유구한 역사와 종교 간 갈등은 너무나 깊고 복잡해서 국제법 준수나 기습공격 여부를 둘러싸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J)는 전쟁의 원인을 '영역에 대한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글의 제목은 '누가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에 있는 땅에 살 권리가 있는가(Why Israel Has No 'Right to Exist?' 2019년 5월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중동 국가들은 발을 딛고 사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싸고 100년 넘게 갈등을 겪고 있다.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중동은 정부와 우리 기업들이 21세기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 지역이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대립 등 이슬람의 복잡한 종교와 부족, 전 세계 경제권의 큰손인 유대인들의 영향력 등을 정교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투자는 실패하고 외교는 벽에 부딪힌다.

아무리 유비쿼터스 온라인 시대이지만 현지 파악은 역시 오프라인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장에 가서 지리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풍토와 문화도 체험해야 한다. 지리경제학과 지리정치학을 아우르는 '지리 전략(geostrategy: geography+strategy)'을 숙지해야 한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는 "오랫동안 비밀스러운 '틈새시장'으로 존재했던 '지정학 자문'이 경영 컨설팅의 주류 영역으로 진입했다"며 지정학 변수들이 중요한 경영상 변수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최근 필자는 연세대 e-MBA에서 '전쟁과 갈등에서 배우는 경영 Insight'라는 제목으로 세 시간 특강을 했다. 기업 현장에 있는 젊은 경영실무자들은 매일 미시적인 경영 주제에 몰입하다 보니 국제감각이 부족했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사자성어는 기업인들에게는 '우리의 문제 현장에 답이 있다'는 명제로 바뀐 지 오래다. 위험이 도사린 지정학적 변수를 잘 가늠하는 것은 정부나 기업에 시대적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정학을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