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는 20세기 대표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물에 닿으면 쉽게 찢어지는 종이봉투의 단점을 획기적으로 보완한 데다 싼값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합성수지 일종인 폴리에틸렌이 주재료라 ‘가성비’도 뛰어나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문제는 분해 기간이 1,000년에 달하는 등 토양을 망가뜨리고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비닐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노릇. 폐기물을 다시 자원으로 만들고, 재활용 과정에서 2차 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자원순환이 환경 산업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배경이다. 강원 춘천시 동춘천산업단지에 자리한 ‘크린산업’은 이런 문제에 주목해 2015년 창업했다. 폐비닐을 재활용해 순환성을 높이고 분해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출발한 기업이다. 16일 만난 이미옥(59) 대표는 “회사 이름처럼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임직원이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크린산업은 쓸모없이 버려진 비닐을 수거해 압출과 배합, 성형작업을 거쳐 너비와 길이가 15m에 달하는 대형 폐기물 수거 봉투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른바 ‘연속비닐’이라 불리는 이 대형봉투 제조가 가능한 업체는 국내에 크린산업을 포함해 단 3곳뿐이다. 대형병원과 유통매장, 커피전문점은 물론 최근 삼성전자와 납품계약을 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는 합성수지 자원순환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19년 4월 환경부 환경표지 인증을 받았다. 지난달엔 재생원료를 활용하면서도 잘 찢어지지 않는 종량제 봉투 제조 특허도 출원했다. 내달 15일엔 국제표준화기구(ISO) 환경경영시스템인증을 받는다. 이처럼 크린산업이 갖고 있는 특허와 인증이 10개에 달한다. 2018년 이후 정부와 강원도가 주최하는 중소기업 포상에서도 11차례 입상하는 저력을 뽐냈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크린산업은 현재 서울 16개 구청과 경기 8개 시군, 강원도 내 12개 시군 등 전국 36개 지자체에 종량제 봉투를 납품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형형색색 봉투 색깔은 다르지만 폐비닐을 재활용한 친환경 제품이란 공통점이 있다”며 “창업과 동시에 끊임없이 설비에 투자하고 기술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크린산업은 춘천 퇴계농공단지 한편에서 월세 500만 원을 내고 공장을 가동한 지 7년 만에 매출이 70억 원대까지 늘었다. 3년 전엔 6,612㎡(약 2,000평) 규모의 생산시설과 보관창고를 갖춘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이 회사는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외국에서 온 결혼이민자 등 전체 임직원의 80% 가까운 39명이 사회적 취약계층인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창업 당시 고용시장에서 외면받는 청각장애인 2명에게 손을 내민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됐기 때문에 이들 직원은 비닐제품을 재단, 포장하고 물류창고로 옮기는 일을 맡는다. 야무진 손놀림과 친화력으로 매출 증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크린산업은 2017년 정부 ‘장애인 표준사업장 인증’에 이어 2020년과 지난해엔 춘천시와 고용노동부로부터 ‘장애인 일자리 창출 유공 표창’을 수상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판로 개척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한 이 대표는 “매출이 늘어나면 구직이 어려운 사람들을 더 채용할 계획”이라며 “환경을 지키고 함께 성장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