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 우울한 소식 하나가 더해졌다. 한국 영화 ‘황야’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로 직행한다는 내용이었다. ‘황야’는 극장가 기대작 중 하나였다. 배우 마동석이 출연하고 허명행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마동석은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지난해와 올해 개봉해 관객 1,000만 명 이상을 불러 모은 ‘범죄도시2’와 ‘범죄도시3’의 주연배우다. 허 감독은 유명 무술감독 출신으로 ‘황야’가 연출 데뷔작이다. 허 감독은 내년 공개 예정인 ‘범죄도시4’를 연출하고 있기도 하다.
‘황야’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갈 수 없는 영화다. ‘황야’의 제작비는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가 출연하고 화제성 있는 감독이 연출한, 규모 큰 영화가 스크린을 건너뛰고 넷플릭스로 향하게 됐으니 극장가에선 한숨이 나올 만하다.
영화사업의 속성은 고위험 고수익이다. 영화는 수년에 걸쳐 제작된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는 통상적으로 제작비의 10~20% 정도를 추가 비용으로 주고 미개봉 영화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험을 감수한 것치고는 적은 수익이다. 코로나19 시기라면 모를까 투자배급사와 영화제작자라면 넷플릭스 직행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황야’는 극장에서 개봉해 손실을 기록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적지만 보장된 수익을 원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여름 시장과 추석 시장에서 한국 영화 화제작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표를 받아 든 영향이 컸으리라.
한국 영화계는 유독 한국 영화가 흥행이 안 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관객들이 옷을 갖춰 입고 일정시간 이동을 해 옆자리 사람과의 팔걸이 신경전까지 치르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과연 관객들을 극장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매력이 있었는지는 회의적이다.
플랫폼 전략에 더 큰 문제가 있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영화인은 OTT를 극장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여긴다. ‘황야’의 넷플릭스행을 보면서도 그런 고정관념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한국 영화계 특징 중 하나는 ‘홀드백(Hold Back)’의 파괴다. 홀드백은 영화산업이 오래전 마련해 놓은 수익 최대화 방식이다. 영화는 보통 극장에서 일정기간 상영 후 주문형비디오(VOD)-케이블TV-지상파TV 등 순으로 시간을 두고 공개돼 왔다. 화제작을 일찍 보고 싶은 이는 극장으로 향하거나 VOD에 지갑을 연다. 정액제 OTT는 영화 최종 유통 채널로 여겨졌다. 하지만 해외와 달리 한국은 최근 홀드백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화제작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이 극장 종영 직후 OTT 쿠팡플레이로 직행한 게 대표적이다.
홀드백은 소비자 입장에선 불편하기만 한 유통 방식이다. 대부분은 보고 싶은 영화를 거실에서든 침대에서든 지하철에서든 빨리 저렴하게 보고 싶어 한다. 영화가 종영하자마자 OTT로 빠르게 향하는 게 일반화되면 애써 극장을 찾으려는 이가 많지 않게 된다. 커다란 스크린과 풍성한 사운드는 분명 매력적이나 극장 밖 관람은 무시 못할 편리함과 가격 만족도가 있다. 극장을 위해선 홀드백이 되살아나야 한다. 좋은 영화만 있으면 극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환상이 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