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생존율 13.9% 불과한 '이 암' 조기 진단하려면…

입력
2023.11.18 07:40
[건강이 최고] 췌장암, K-Ras 유전자 이상이면 70~90% 걸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배우 김영애 씨, 2002년 월드컵 스타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배우 변희봉 씨 등 췌장암으로 쓰러진 유명인이 많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췌장암 5년 생존율은 13.9%로 전체 암 생존율(70.7%)의 5분의 1에 그치기 때문이다. 췌장암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이 5년 안에 목숨을 잃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고약한 암’ ‘최악의 암’으로 불린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망 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췌장암 사망률도 10만 명당 14.3명으로 폐암(36.3명) 간암(19.9명) 대장암(17.9명)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췌장암 사망률이 전년(2021년)보다 5.8% 상승하면서 처음으로 위암(13.9명)을 제쳤다.

◇췌장암, 대부분 3~4기에 발견돼

췌장(이자)은 위 뒤쪽의 몸속 깊숙이 위치해 있다. 길이가 15㎝ 정도되는 가늘고 긴 장기다. 십이지장·담관과 연결되고 비장과 인접해 있다. 췌장은 머리와 몸통, 꼬리 세 부분으로 나뉜다. 십이지장에 가까운 부분이 머리(頭部), 중간이 몸통(體部), 가장 가느다란 부분이 꼬리(尾部)다.

췌장은 우리 몸에서 크게 2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췌장액을 분비한다. 췌장액은 십이지장에서 음식과 섞이면서 음식이 소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인슐린과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한다. 췌장은 조직학적으로 외분비샘과 내분비샘으로 나누는데 전체 췌장암의 85% 정도는 외분비샘으로 부르는 췌관에서 생긴다.

이태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위암이나 대장암은 1~2기에 발견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지만, 췌장암은 장기가 몸속 깊숙이 위치해 대부분 3~4기에 발견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일반 종합검진에서 하는 복부 내시경이나 초음파검사로는 확인하기 어렵고, 특히 췌장 몸통과 꼬리 부분은 위장 때문에 관찰이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다. 혈액검사로도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력 등 유전적 요인이 주요 발병 원인

췌장암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유전·환경적 요인이 함께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 중에서는 K-Ras(케이라스)라는 유전자 이상이 특히 중요하다. 췌장암의 70~90%에서 이 유전자 변형이 발견된다. 가족력이 있으면 발생률이 18배까지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다.

환경적 요인은 식습관·흡연·만성 췌장염·나이·음주 등이 꼽힌다. 육류나 기름기 많은 식습관을 가지면 췌장암 발병 위험을 2배가량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도 췌장암의 발생과 관련이 깊다. 흡연자는 췌장암의 상대 위험도가 2~3배 정도 높다. 만성 췌장염이라면 15배까지 췌장암 위험이 올라간다.

남녀 비율은 1.5대 1 정도로 남성에서 더 많고, 50세 이상에서 발병률이 올라가기 시작해 70세가 되면 1,000명 당 1명 정도의 유병률을 보인다.

◇80%가 망가질 때까지 별다른 증상 없어

췌장은 80%가 망가지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나타날 때는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에서 복통과 체중 감소가 나타난다.

통증은 명치 통증이 가장 흔하지만 복부 어느 쪽에도 나타날 수 있다. 통증이 나타날 때는 이미 췌장 주위로 암이 침윤했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통증이 없을 때보다 예후(치료 경과)가 좋지 않다.

췌장 머리 쪽에 발생하면 80% 정도에서 황달이 나타난다. 종양 때문에 총담관이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막혀 담즙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그에 따라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췌장 몸통이나 꼬리 쪽에 암이 발생하면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시간이 꽤 지나서야 발견될 때가 많다. 종양이 자라면서 십이지장으로 흘러가는 소화액(췌액과 담즙)의 통로를 막아 지방 소화에도 문제가 생긴다.

또 전에 없던 당뇨병이 나타나거나 기존 당뇨병이 악화하기도 하고 췌장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당뇨병이 췌장암 원인이기도 하지만 췌장암에 의해 2차적으로 췌장염이 발생할 때도 적지 않다.

◇수술 가능한 환자 10%에 불과

췌장암이 의심되면 초음파검사,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검사(EUS), 양성자방출단층촬영(PET), 혈청 종양표지자 검사, 복강경 검사, 조직 검사 등이 진행된다.

현재까지 췌장암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수술이 유일하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후 보조적 치료가 필요할 때는 항암화학요법·방사선 치료 등이 진행된다.

치료법은 암 크기와 위치·병기·환자 나이·건강 상태 등에 따라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중에서 선택한다.

췌장암의 60%는 췌장 머리 부분에 생기는데 이때는 췌장 머리 쪽으로 연결된 십이지장·담도·담낭을 함께 절제하는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한다. 몸통과 꼬리 부분에 암이 생기면 비장을 함께 자르는 췌장미부절제술을 시행한다.

하지만 췌장암 환자 중 진단 당시 수술이 가능한 비율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의 경우 침윤된 주위 혈관을 절제하면서 수술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암세포 크기를 줄이는 항암 치료를 한 뒤 수술하기도 한다.

이태윤 교수는 “췌장암은 다른 암보다 예후가 매우 좋지 않기에 췌장암 위험 인자가 있다면, 즉 췌장암 가족력이 있거나 고령·흡연·당뇨병·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으면 정기적으로 초음파, 복부 CT 검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예방을 위해 지방이 많은 식습관보다는 식이질이 풍부한 채소나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금연과 함께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