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 하잖아요? 사람이 여유가 생기고 적극적으로 변해요. 일은 고되어도 시간이 금방 가거든요. 솔직히 처음에는 제조업인데 주 4일제가 잘 될까 싶었죠. 이전 회사에서 용접일 할 때는 주 6일, 주 7일도 했거든요. 그런데 영업팀, 시공팀, 제조팀이 미리 다 일정을 짜놓고 수시로 조율하면서 일하니 이게 되더라고요."(자동문 제조사 코아드 직원 김호은씨·39)
"주 5일 때는 마음 편히 여행 한 번을 못 갔죠. 4주에 9일 쉬는데 그중 이틀은 밤새워 일하는 나이트 근무 다음 날이라 사실상 '자는 날'이거든요. 주 4일제를 하니 월급은 좀 줄어도 예상보다 더 좋았어요. 몸이 회복하는 속도가 다르고, 환자 대할 때도 여유가 생겼고요."(강남세브란스병원 근무 4년 차 간호사 이혜미씨·27)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 4위다. 하나 야근과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풍토에 균열을 내는 '주 4일제' 실험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험자들 증언은 이렇다. '주 4일제 하고서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활력도 생기고, 근로 의욕도 더 커졌단다.
한편에서는 주 4일제에 대한 의구심과 반문도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회사는 땅 파서 장사하냐", 하루 덜 일하면 생산성 유지가 되겠냐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월급이 깎이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직종과 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모든 일터에 곧바로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과로 사회' 한국에 시사점을 주는 '주 4일제 일터' 두 곳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입사 후 3년 내 50% 퇴사'
고강도 노동과 불규칙한 3교대제는 간호사들의 목표를 '탈임상'(병원에서 탈출)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국내 빅5 의료기관인 세브란스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후 3년 내 반 이상 떠나고, 몇 해 내로 남은 반의반이 또 떠난다"고 권미경(51) 세브란스병원 노조위원장은 말했다. 첫 1년을 버티면 병동에서 '돌잔치'를 열어줄 정도다.
병원 입장에서도 떠나는 간호사들을 붙들 방안이 필요했다. 노조가 2019년부터 제안해 온 주 4일제 시범 사업에 지난해 노사가 합의한 이유다. 올해부터 세브란스는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주 4일제를 실험 중이다. 신촌·강남의 노동 강도가 센 3개 병동에서 상·하반기 각 15명씩 총 30명 규모로 작게 시작했는데, 중간 평가 결과는 고무적이다.
참여 간호사의 행복도(100점 만점)는 53점에서 71점으로, 일과 삶 균형은 37점에서 62점으로 올랐다. '자주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다'는 66.7점에서 41.7점으로,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73.9점에서 53.3점으로 떨어졌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박성희(가명·42)씨는 "주 4일제를 하니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늘고, 피로가 덜해 환자 컴플레인도 적극 해결하게 되더라"고 했다.
시범 사업 대상인 신촌 171·172병동은 노동 강도가 높아 30명 안팎의 간호사 중 매년 3~5명씩 퇴사자가 생겼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0명'이다. 주 4일제 참여자는 일부여도 병동 전체 분위기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전언이다.
병원은 24시간 운영되니 충원이 필요했다. 병원은 3개 병동에 추가 인력 5명을 투입했고, 대신 참여자는 임금을 총액 기준 10% 안팎 줄였다. 그래도 만족도는 높다. '돈보다 확실한 휴식'을 택하려는 수요가 있는 것이다. 이혜미씨는 "솔직히 월급날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돈보다 개인 시간을 갖는 게 우선이었고, 휴식이 간절했기에 만족감이 컸다"고 했다.
내년에는 40명 규모로 사업이 확대 실시된다. 권 위원장은 "의료진이 건강해야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도 담보할 수 있다"며 "정부와 의회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준다면 희망자를 받아 꾸준히 지속되는 모델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고질적 '간호인력 수급'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장시간 노동 문제 해법으로 주 4일제가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청년들이 안 온다'며 외국 인력으로 눈을 돌리는 중소기업이 숱하지만, 2014년 설립된 자동문 토털 솔루션 전문 기업 코아드(COAD)는 직원 전부가 내국인이고 30대 초중반이 대다수다. 비법은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주 4일제'에 '초봉 4,000만 원', '육아하기 좋은 기업' 등 각종 복지 혜택이다.
회사 운영이 잘 될까 싶지만, 확실한 보상을 통한 직원 동기 부여로 회사도 동반성장했다고 한다. 초기 창립 멤버 16명이던 시절 첫 매출액은 30억 원(2015년)이었는데, 올해는 국내 사업장만 직원이 총 80명에 매출은 200억 원 정도다. '적일많벌(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이 경영 철학이라는 이대훈(46) 대표는 "저도 14년 직장 생활 후 창업했는데, 그때는 밤늦게 퇴근하며 일과 잠으로 좋은 시절을 다 쓴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세 자녀와 놀 시간도, 아내와 단둘이 데이트할 여유도 없었던 과거 경험이 '직원 복지'에 신경 쓰는 계기가 됐다는 것.
주 4일제는 단계적으로 시행해 정착됐다. 처음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휴가를 줬고, 2019년 격주로 주 4일제를 했다. 이듬해 주 4일제 정착이 더 어려워 보이는 생산직 기술센터부터 주 4일제를 시행해 안정화되자, 2021년 전 부서로 전면 확대했다. 월급도 삭감 없이 100% 그대로다. '기존 업무량을 4일 내 하려니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영광(35)씨는 "그 안에 효율적으로 끝내려고 마음을 먹으면 아이디어는 나오더라"라며 "4일이 고되어도 나머지 3일을 푹 쉴 수 있으니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주 4일제를 하며 매출과 임금을 유지하려면, 결국 '더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대표는 "불필요한 정기 회의와 대면 보고는 없앴고, 제작 과정의 실측 오류를 줄이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효율화를 위해 지금도 계속 노력 중"이라고 했다. 주 4일제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사 모두 머리를 맞대 비효율적 업무 절차를 개선하고, 생산성 향상 방안을 찾는 혁신이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한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업무 집중도와 몰입도를 높이고 유휴 시간을 줄여야 생산성 향상과 함께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회사 와서 집 걱정하고 집 가서 일 걱정할 게 아니라, 직원들이 잘 살고 회사에서 대우받아야 그만큼 열심히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내년에 신입사원 초봉을 5,000만 원으로 인상하고 기존 직원 연봉도 함께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에 따른 저생산성 극복의 한 방법으로 주 4일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민간의 주 4일제 시도, 학계의 연구, 정부의 후방 지원이 맞물리며 여러 실험 사례가 누적돼야 장기적으로 확산이 가능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주 4일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성공 요건은 무엇인지, 특정 산업군에 맞는 주 4일제 방법은 무엇인지, 우수 인력 유치나 생산성 향상 등 기업에는 어떤 실행 유인이 있는지 등 여러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더 많은 도전과 실험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규준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 4일제를 정부 주도로 일률적으로 시행하기는 어렵고, 각 회사마다 업무 재정의와 효율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성공 사례들이 누적되고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면 더 많은 기업이 도입을 고민할 것이고 이때 정부 지원과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 4일제가 성공하려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과 직원들 간의 공감대 형성, 회사 경영 상황에 대한 노사 간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등이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험과 혁신은 노사 자율로 남겨두되, 정부가 주 4일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인력난이 심한 중소기업계나, 생명·안전 등 공공성이 있는 산업군 중 이직률이 높은 곳을 우선해 주 4일제 도입 사업장에 정부가 과도기적 지원을 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업종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해 주 4일제 도입을 장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등 '주 4일제 논의' 밖 장시간 노동 인구를 포괄할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