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성장률 역전시킨 '슈퍼 엔저'... 장기화 땐 수출 타격

입력
2023.11.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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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의 역습]
10년 전 엔저 충격 겪은 한국
이젠 품질로 승부, 영향력 축소
"주력 업종 경쟁력 높여야"

30년 만의 엔저 현상은 회복 기미가 분명하지 않은 한국 경제를 안갯속으로 밀어넣는 불안 요인이다. 올해 들어 심화한 엔저가 이어진다면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다투는 알짜 수출 산업 등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엔저, 한국 수출 위협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올해 일본 경제 성장률을 직전 7월 전망 대비 0.6%포인트 오른 2.0%로 수정 제시했다. 올해 성장률을 1.4%로 묶은 한국 성장률과 대비된다. 한국 경제가 쓰러졌던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발생한 한·일 성장률 역전은 엔저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1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1.92엔까지 치솟는 등 엔화 가치는 1990년 이후 33년 만의 최저치에 가까워졌다.

엔화 가치 하락은 크게 두 방향에서 경제를 움직인다. 우선 일본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성장에 기여한다. 실제 1, 2분기 일본 경제는 호황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엔저는 오히려 경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동한다. 수입물가를 올려 소비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면 엔저는 반갑지 않은 현상이다. 과거 엔저로 곤혹스러웠던 사례를 보면 알기 쉽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집권기인 2013년부터 본격화한 엔저 여파가 누적되면서 2015년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감소로 돌아섰다. 국제 시장에서 엔저로 가격 경쟁력을 등에 업은 일본 상품이 잘 팔리고, 한국 상품은 고전하면서다.

엔저에 한국 수출이 영향받는 건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전기·전자 등 양국 간 경쟁하는 산업 분야가 많은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한국의 수출 가격, 물량은 각각 0.41%포인트, 0.2%포인트 떨어진다. 또 산업 구조가 얼마나 겹치는지 보여주는 '제조업 수출 경합도'는 일본이 주요 수출국 중 가장 높다.

엔저 접어도, 재등판 대비해야

반면 10년 전처럼 엔저가 한국 수출에 직격탄을 날리긴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한·일 간 수출 경합도는 2015년 0.487에서 2021년 0.458로 내려갔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국 제품 품질 경쟁력이 좋아진 결과다. 일본에 앞선 조선업·반도체, 도요타에 밀리지 않은 현대자동차 등을 떠올리면 된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대부분 제조업 업종에서 경합도가 낮아졌다"며 "일본의 수출 구조 차별화, 한국 제품 경쟁력 제고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다. 우리 기업 입장에선 품질 경쟁력이 있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가진 일본과 오랫동안 다투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이 엔저 노선을 접을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으나 안심하긴 어렵다. 경기 악화 땐 엔저를 언제든지 꺼낼 수 있어서다. 수출 경쟁력을 높여 경합도를 낮춰야 하는 이유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엔저에 따른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면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투자를 통해 발전했듯 탄소 배출을 줄인 친환경 선박 및 철강재 생산, 반도체 고도화 등 주력 업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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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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