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과학자들에게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아토초(100경분의 1초) 연구의 핵심 도구는 아주 강력한 빛, 초강력 레이저였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물질이나 아주 빠른 현상을 순간 포착하기 위해서는 플래시, 즉 아주 짧은 빛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레이저를 이용해 아토초 단위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아토초 펄스'를 처음으로 구현해내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비는 우리에게도 있다. 심지어 성능은 세계 최고다. 월등한 장비를 갖춘 우리 과학자도 가까운 미래에 노벨상을 기대해볼 수 있는 셈이다. '세계 1등 초강력 레이저'가 있는 광주를 찾아, 세계 속 우리 과학의 위상을 들어봤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레이저연구단은 레이저 연구 분야의 선두그룹이다.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출력이 높은 4페타와트(1PW=1,000조W)급 레이저를 개발해, 지금도 가동 중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시간당 전체 빛에너지 양이 100PW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그 힘을 가늠해볼 수 있다.
출력도 크지만, 세기도 강하다. 일반적으로 레이저의 세기는 많은 빛을 얼마나 작은 공간에 집중시키는지(집속)에 달려 있는데, 2021년 연구단은 4PW 레이저 빔을 지름 1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짜리 공간에 집속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발전용량의 1,000배에 달하는 힘을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공간에 집중시켰다는 얘기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센 레이저 기록이다.
강한 레이저일수록 우주나 미시세계같이 극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을 탐구하는 데 유용하다. 더 빠른 빛일수록 한층 더 미세한 현상을 포착할 수 있어서다. 남창희 연구단장은 "최근 루마니아에서 우리보다 강한 10PW급 출력의 레이저를 선보였지만, 집속된 레이저 세기로 보면 세계 기록은 지금도 우리가 갖고 있다"면서 "이를 이용해 아토초의 1,000분의 1 수준인 '젭토초' 펄스 구현을 위한 연구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적 응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아토초보다 긴 펨토초(1,000조분의 1초) 펄스를 만드는 레이저는 각막을 최소한으로 깎는 '스마일 라식'에 이미 사용되고 있다. 아토초 펄스도 의료뿐 아니라 여러 산업적 쓰임이 생길 거라고 연구단은 예상한다. 남 단장은 "10초에 한 번 쏘던 초강력 레이저를 1초에 한 번씩 쏠 수 있게 된다면 산업, 의학,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유전자(DNA)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말했다.
연구단에는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하겠다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문의가 숱하다. 이는 지난 20년간 초강력 레이저 개발에 꾸준히 투자해온 결과다. 하지만 최근 외국의 추격이 심상치 않다. 유럽연합(EU)이 20PW, 미국이 50PW 규모의 초강력 레이저를 구축 중이고, 중국은 아예 100PW짜리를 만들겠다며 바삐 쫓아오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GIST가 위치한 전남을 중심으로 몇 해 전부터 더 강한 초강력 레이저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정부 차원에서 기획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당초 100~200PW급까지 논의됐으나, 현재는 50PW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인 만큼 강력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