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의 '대형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군함 유지·보수(MRO) 개발사업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시장성과 수익성에서 가장 큰손인 미국이 '방공망 체계가 불충분하다'며 한국 조선업체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유사시 조선소에 맡긴 미 군함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미국 함정 MRO 시장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지난 2월과 4월 미 해군 측 고위급 인사가 잇따라 조선소를 방문해 생산 공정과 제품을 둘러보고, 국내 조선업체와 전·현직 해군 관계자들과 MRO 및 선박 제조 협력을 논의했다. 방문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미 해군 수상함 사업을 총괄하는 해군 함정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PEO Ships)인 토머스 앤더슨 해군 소장과 데이비드 라일리 미 해군연맹 총재 등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한국의 선박 제조 능력은 기대감을 한층 키우는 요인이었다. 한국은 세계 선박 시장의 1, 2위를 다투는 조선 강국 중 하나다. 반면 미국은 최근 해군력 쇠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선박 제조능력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이 당연히 조선 강국이자 동맹국인 한국에 손을 내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대와 달리 한국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현재 기준 전 세계 566억 달러(약 73조 원), 2028년 624억 달러(약 81조 원)까지 성장이 예상되는 MRO 시장을 노린 일본과 인도가 또 다른 경쟁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지난 5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일본의 민간 조선업체들에 미 해군의 함정 MRO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일본과 인도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일본 군 소식통은 17일 "일본 조선소의 경우 주변에 유사시 핵심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대형 격납고, 공군기등 방공체계가 마련돼 있다"며 "조선소는 해군력을 보장하는 핵심시설이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방공체계를 군 당국과 협의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경우에도 군의 방공망 지원과 더불어 조선소 차원에서 요격체계를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약점이 이들에게 장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미 측은 최근 우리 군에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 역시 조선소 지역의 방공망 체계가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해법을 선뜻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최근 조선업체들이 국가중요시설 합동방어태세 진단 실태조사를 진행해 대응체계를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당장 구체적인 방공체계가 마련돼 있지는 않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통상 방공망은 지역 및 섹터 개념으로 관리가 된다"며 "부산 같은 작전항구라면 모를까, 1차 방어 책임은 해당 회사에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전문가는 "당장 우리 조선업체들은 한국이 미국과 국방조달협정(RDP)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라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릴 수 있는 구조"라면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군의 협조도 취약해 선점할 수 있는 시장을 놓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