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자국 내 주요 도시에 중국 경찰을 배치하기로 한 정부 결정으로 들썩이고 있다. 범죄 우려로 중국인 관광객 유입이 줄어든 데 따른 특단의 조치이긴 하나, 치안을 타국에 맡기는 건 주권 침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정부가 한걸음 물러섰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이다.
14일 태국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타빠니 끼얏파이분 태국 관광청장은 전날 스레타 타위신 총리와 외국인 관광객 활성화 관련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정부가 파견한 경찰이 (태국 내) 주요 관광지에서 태국 경찰과 합동 순찰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태국이 안전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을 중국에 보여 줄 수 있다”며 “중국 경찰이 태국은 안전한 곳임을 확인해 주면 중국인 관광객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치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다.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이는 이 조치의 목적은 태국 관광산업의 침체를 극복하려는 데 있다. 태국에서는 관광업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한다. 특히 중국인은 관광산업의 ‘큰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전체 외국인 여행객 4,000만 명 중 28%(약 1,100만 명)가 중국인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11월 초까지 태국을 찾은 중국인은 280만 명에 그쳤다. 태국 정부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내년 2월까지 일시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비자 면제 영구화도 검토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회복세는 더디기만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인의 태국행 기피를 더 부추기는 사건도 최근 발생했다. 지난달 태국 방콕 쇼핑몰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범죄로 중국인 관광객 한 명이 사망한 것이다. 국경 지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등 범죄 공포도 연일 커지고 있다. 결국 정부가 ‘태국은 안전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중국 경찰 동원 카드까지 꺼낸 셈이다.
태국 언론 타이거는 이를 ‘우호의 만리장성을 쌓는 조치’라고 표현했다. “중국인들은 평소 경찰을 존경하기 때문에, 중국 치안 담당자들의 태국행은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게 이 매체의 평가다. 관영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언론들도 “양국 신뢰를 높이는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주권 침해 논란이 들끓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독립된 주권국에서 타국 경찰이 순찰에 나설 이유가 없다” “치안권을 중국에 넘겨야 할 만큼 태국 경찰이 무능력하냐” 등과 같은 질책이 쏟아졌다. 태국이 중국에 잘 보이려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태국이 해외 거주 중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표적으로 삼는 ‘비밀 기지’가 될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이탈리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등은 2015년 자국 경찰과 중국 경찰의 공동 순찰 활동을 허가했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자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유럽 내 반체제 인사 탄압을 위한 중국 공안의 중심 거점이 됐다는 비판이 커지자 지난해 순찰을 종료했다.
별다른 예고도 없이 능력을 의심받는 처지가 된 태국 경찰도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토르삭 수크비몰 태국 경찰청장은 “우리 경찰은 국민과 관광객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며 “주권뿐 아니라 국가 안보도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난티왓 사맛 전 태국 국가정보국 부국장은 “태국 경찰의 뺨을 때리는 행위”라고 일갈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태국 정부도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중인 타위신 총리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범죄 예방을 위해 중국과 정보를 공유하긴 하더라도, 태국에 중국 경찰을 배치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