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부산의 마지막 성매매 지역인 '완월동'에 갇혀 살다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쫓겨난 40대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부산 서구 충무·초장동 일대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은 최근 재개발 계획이 승인되면서 폐쇄를 앞두고 있다.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14일 완월동에서 25년간 지낸 강모(46)씨의 편지를 공개했다. 강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또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게 되며 가정형편은 더욱 악화됐고,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티켓 다방'에 가게 됐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빚이 늘었다.
강씨는 스물한 살 때 티켓 다방에서 쌓인 빚을 갚기 위해 완월동에 왔다. 그러나 빚은 더욱 무섭게 쌓였다. 1997년 당시 월세 명목의 '달비'는 100만 원 이상이었고, 식비 등 하숙비 명목의 돈까지 합치면 매달 200만 원 이상을 업주에게 내야 했다. 감시도 삼엄했다. 강씨는 "목욕탕에 가는 것은 물론 외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밤낮없이 '이모'들이 지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며 "20여 년간 그 안에서만 돌고 돌았다.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고 밝혔다.
강씨가 25년 만에 완월동을 떠날 수 있게 된 건 부산시가 이 일대를 44~46층 규모 주상복합건물 재개발 계획을 승인하면서다. 그러나 이제 강씨가 이곳을 나서면 갈 곳도, 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업주가 "그간 못 낸 달비와 손님이 내지 않은 외상은 카드로 결제하라"고 해 생긴 수천만 원의 빚도 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는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강씨는 "국민학교 졸업장도 없다. 당뇨에 합병증까지 왔지만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살림에 따르면 강씨처럼 재개발 사업 추진에 따라 쫓겨나게 된 완월동 집결지 여성은 6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강씨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다. 완월동에 있다 자립한 한 여성은 "18세 때 고액 알바를 소개받아 가라오케에서 일하게 됐는데 저도 모르게 다양한 명목의 빚이 생겼고, 그렇게 미성년자 신분으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됐다"며 "너무 힘들어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많은 빚과 이자가 생겼고, 소개업자들에 의해 여기저기 업소를 옮겨 다니며 수많은 세월을 날려 버렸다"고 했다.
살림은 부산시가 강씨와 같은 이들이 치료와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생계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는 내년 예산안에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립·자활지원 조례(이하 조례)' 명목으로 예산 3억5,200만 원을 편성해 이달 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살림 측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일부 시의원의 반발로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살림 관계자는 "업주들은 대부분 재개발 지역 땅을 소유해 큰 이익을 보게 됐다"라며 "반면 이곳에 갇혀 살던 여성들은 갈 곳조차 없어 주거 지원과 병원 치료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