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걸어두느라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자주 본다. 최근 많이 들리는 처세의 말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니, 사회관계망 시대에 그것이 자신의 존재 척도로 오인되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라면 어떨까? 시선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타인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들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텐데 그것이 도리어 쉽게 이해를 마무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했던 이유는 결국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일까? 백온유의 소설 '경우 없는 세계'는 여기서 시작한다.
간추리자면, 가출 경험을 가진 인수가 가출 청소년인 이호를 만나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도 기어이 새로운 삶을 모색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 가정 폭력과 청소년 노동 등 여러 사회 문제가 섞여들며 윤리나 치유에 대한 질문을 붙들지만 어쩌면 그것은 소설의 솥 안에 떨어진 한 스푼의 소금 정도일 것이다. '유원'과 '페퍼민트'를 거쳐 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을 통해 백온유가 보여준 것은 인간의 몸속에서 조용히 끊고 있는 마음들이고, 그로부터 표정과 말투와 망설임의 끄트머리까지 섬세하게 연결된 삶의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사건과 내막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 나약함과 더불어 누군가를 아끼고 걱정하며 그래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좋은 소설이 으레 그렇듯, 그 마음들은 소설 밖으로 걸어 나와 어느새 독자의 맞은편 자리를 차지하고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말해도 좋을 비극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요컨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독자들은 타인을 애써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그까지 자신의 일부로 포함해내는 ‘삶’을 만나게 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스스로를 지키는 관용으로 돌아오는 순간의 증언을 듣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없기 때문에 타인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없는 것으로 삶을 얻는 것. 그 증언 앞에서 우리는 사회관계망에 맡겼던 존재의 척도를 타인의 체온으로 대체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때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의 실천 행위가 된다. 백온유의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