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피고인으로 출석하는 재판을 방송사들이 생중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법정을 자신의 '쇼 무대'로 만들어 내년 대선에 활용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이듬해 1월 6일 지지층의 의회 폭동을 부추겼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에 재판 전 과정의 생중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최대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판을 비밀스럽게 처리하려 한다”며 재판 생중계를 허용해 달라는 언론사들의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법원 규정상 형사 재판의 방송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지난달 AP와 미국 NBC방송 등 몇몇 언론사가 재판을 생중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워낙 많은 데다, 청중을 전부 수용하기에는 법원이 좁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논리도 댔다. 반면 재판을 생중계하면 변호인과 증인들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법정을 모독할 수 있고 얼굴이 공개된 증인들이 괴롭힘이나 협박을 당할 수 있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
사법 리스크를 안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재판 생중계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해당 사건 공판이 개시되는 내년 3월 4일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판세가 결정될 가능성이 큰 ‘슈퍼 화요일’ 전날이다. 슈퍼 화요일은 민주·공화 양당 모두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당원대회(코커스)나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가장 많은 주(州)에서 열리는 날을 가리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을 여론전의 수단으로 쓴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재산을 부풀려 부정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한 민사 재판에 지난달 사흘 연속 출석했는데, 소송을 제기한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이 이를 두고 “이목 끌기 및 선거자금 모금 목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NBC의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는 등) TV리얼리티쇼 스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판 생중계를 원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며 “시끄러운 갈등을 일으켜 법적 쟁점을 흐리고 소송 절차를 통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확대하는 것은 대통령 재선을 노리는 그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