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여자 농구··· '전국 최강' 초등학교도 선수 3명뿐

입력
2023.11.11 13:00
[광주 방림초 농구부, 28년 만에 해체]
교장·교감 발 벗고 부원 모집했으나 ‘0명’ 
“운동부는 훈련 많고 공부 못 해” 거부감 
'취미' 클럽 전환 후 23명까지 부원 증가
정작 협회에선 "엘리트 대회 참가 불가"
'동네북' 한국 여자 농구 "뿌리부터 흔들"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3초, 2초, 1초. 농구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소리가 강원 철원국민체육센터를 울렸다. 33대 30. 벤치에서 광주 방림초등학교 선수들이 코트로 뛰어나와 선수들과 얼싸안았다. 경기 성남 수정초등학교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2021년 11월 24일,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 농구 여자 초등부 결승에서 방림초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 이후 19년 만의 금메달이었다.

교사, 학부모, 교육청 모두가 축제분위기였다. 불과 두 달 전 학교에 부임한 심용철(50) 교감도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농구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농구부의 미래인 저학년(1~3학년) 선수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올해 2월 28일부로 방림초 여자 농구부는 해체됐다. 1996년 창단 이후 2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농구와 영원히 이별한 것은 아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방림초 체육관에는 ‘광주방림농구클럽’이라는 새로운 문패가 걸렸다.

농구부에 오려는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2021년 소년체전이 끝나고 심 교감과 박종기(54) 감독은 소주잔을 기울였다. 우승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박 감독은 근심이 가득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농구부는 6학년 4명, 5학년 3명 등 7명뿐이었다. 6학년이 졸업하는 내후년(2023년)에는 선수가 3명만 남는다는 얘기였다. 남은 1년간 어떻게든 3~5학년 선수를 모아야 했다. 심 교감은 학교가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박 감독에게 약속했다.

2022년 새 학기부터 전사적인 ‘농구부 살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박 감독은 주변 초교 8곳에서 4학년 전(全) 학급을 일일이 돌며 재능기부 형태로 농구 수업을 했다. 농구를 좋아하거나 운동 신경이 좋은 여학생을 찾기 위해서였다. 방림초 안에도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농구 클럽을 개설했다. 자녀가 방림초 농구부원인 송윤기(43) 코치도 박 감독을 도와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다른 학교 여학생 20명과 학부모를 일일이 접촉하며 입단을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농구시키려고 자녀를 멀리 떨어진 학교에 전학 보낼 학부모는 없었다. 방림초 학생들도 설득이 쉽지 않았다. 김승중 교장이 직접 리크루팅에 나섰지만, 학부모들은 오후 3~6시 훈련하면 '학원은 언제 보내고, 공부는 언제 하느냐'며 거절했다. 취미라면 모르겠지만, 11~12세부터 프로리그 진출을 목표로 농구에 ‘몰빵’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2학기마저 끝나가고 있었다. 프로젝트 실적은 0명. 심 교감은 ‘학교 운동부’ 체계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선수를 끌어모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박 감독에게 학교가 아닌 지역 단위로, 성적이 아닌 취미 중심의 클럽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심 교감은 광주시교육청에서 학교스포츠클럽 장학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2013년부터 엘리트 체육 지도자로 살아온 박 감독은 달갑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텅 빈 체육관에서 경기도 못 뛰고 드리블 연습만 하고 있는 부원 3명의 모습이 스쳐갔다. 어차피 해체될 거라면 뭐라도 해봐야 했다. “그거, 한번 해보시죠.”

‘정년보장’ 일자리 포기한 감독,밤에 체육관 열어준 교장


클럽으로 전환하려면 박 감독이 한번 더 결단을 해야 했다. 농구부 감독이 클럽 대표를 맡으려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정년이 보장된 무기계약직 신분을 버리고, 5년 동안만 교육청에서 월급을 지원해 주는 계약직 자리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였다. 고민 끝에 박 감독은 사직서를 냈다. 선수가 없어 농구부가 해체되면 월급 따박따박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마지막 걸림돌은 체육관이었다. 클럽 운영 시각은 오후 4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였다. 체육관이 야간에 개방하려면 학교장의 동의가 필요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오후 6시부터는 체육관 문을 걸어 잠갔다. 김 교장은 ‘쿨’하게 허가했다. 그는 2016년 방림초 농구부 감독을 맡으며 선수 기근에 시달리는 여자 농구의 처참한 현실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농구 저변이 넓어질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리스크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올해 새 학기 시작과 함께 농구부는 해체되고 ‘광주방림농구클럽’이 탄생했다. 여자 농구부가 클럽으로 전환된 첫 사례였다.

“태권도장보다 낫다” 농구부원 3명→23명

결과는 놀라웠다. 부원이 무려 23명까지 늘었다. 운동부가 싫다던 학부모들이 클럽에는 마음을 열었다. 회비도 없고, 학원 끝나고 저녁에 보내도 되니 장점이 많았다. 돈 내고 태권도장 보내느니 농구시키는 게 낫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다른 학교에서도 4명이나 왔다. 방림초로 전학 올 필요 없이 클럽 소속으로 대회에 나갈 수도 있었다. 광주에서 농구하고 싶은 여학생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거점’ 농구부가 된 셈이다.

부원이 많아지니 기존 10인승 스타렉스로는 감당이 안 됐다. 학교는 15인승 차량인 ‘쏠라티’를 추가로 계약했다. 대회나 훈련을 갈 때마다 차량 두 대를 끌고 가니 다른 학교 농구부 지도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년체전 때도 대부분 여자 농구부는 차량 한 대만 끌고 올 정도로 선수가 없었다. 울산 연암초 여자 농구부 김수희(44) 코치도 송 코치를 붙잡고 클럽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김 코치는 지난해 말 선수 수급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다. ‘홈그라운드’ 울산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선수가 없었다.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6학년 7명이 졸업하는 터라 선수가 4명뿐이었다. 백방으로 선수를 모집하러 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다. 김 코치는 결국 올해 소년체전에선 농구 경험이 없는 일반 학생을 주전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4대 5 경기였다. 연암초는 44점 차이로 대패했다. 김 코치는 선수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렸다.

암울한 여자 농구··· 농구부에 저학년이 없다

현재 대부분의 초등학교 농구부는 방림초와 연암초처럼 머리만 큰 ‘가분수’ 구조다. 8월 전국 유소년 하모니 농구리그 챔피언십에 참여한 선수 123명(11개 팀) 중 5~6학년이 98명으로 79.7%에 달했다. 이들이 1~2년 뒤 졸업하면 농구부는 폐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신규 부원을 모집하면 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저학년 때 농구공을 만져보지 않은 4~5학년 여학생이 농구를 시작할 가능성은 낮다. 운동부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도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사실상 해체 상태인 농구부도 적지 않다. 농구협회에 등록된 초교 여자 농구부 23곳(299명) 가운데 3곳은 올해 대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28세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감독은 대회에 나가면 다른 학교 선수들이 몸 푸는 모습만 봐도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초보’ 학생을 주전으로 뛰게 하는 팀이 정말 많아졌다고 한다. 그만큼 선수가 없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농구부의 위기는 곧 여자 농구 전체의 위기이다. 입시 위주인 우리 교육 시스템에서 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뛰는 국내 선수 93명 중 82명(88.2%)은 초등학교 때부터 볼을 잡았다. 초교에서 선수가 올라오지 않으면 중·고교 농구부도 순차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고교 농구판에선 선수가 없어 부상자가 주전으로 뛰거나, 4대 5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여자 농구는 사망 직전이나 다름없다.

어차피 선수도 없는데··· 그들만의 엘리트주의

그럼에도 농구계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송 코치는 클럽 창단 한 달 뒤인 올해 4월 '대한민국농구협회장배'에 출전하려고 농구협회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했다가 깜짝 놀랐다. 협회 측은 “엘리트 농구부만 참가하는 대회라서 클럽은 받아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렇다고 프로 산하 유소년 농구클럽과 사설클럽 등이 참여하는 클럽 대회에도 나갈 수 없었다. 부원 가운데 5, 6학년은 농구협회에 엘리트 선수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였다.

심 교감은 6학년 부원들을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진짜' 농구 선수를 목표로 운동해 온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진학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소년체전 외에 다른 대회는 나가 보지도 못하고 초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처지였다. 송 코치도 부원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코치님, 저희는 대회 언제 나갈 수 있어요?"라고 물어볼 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여자 농구 저변을 넓히려는 어른들의 시도가 의도치 않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 교감은 말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한일전을 보는데 처참하더라고요. 사실 여자 농구를 살릴 해법은 다 알잖아요. 어릴 때부터 많은 아이들에게 농구를 접하게 하고, 대회도 많이 열어주고, 그러다 보면 서서히 실력 있는 선수들이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아직도 어른 잣대로 클럽, 엘리트를 나누고 정작 농구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게 옳은 건가요. 공교롭게도 엘리트와 클럽을 통합한 축구와 야구는 모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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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박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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