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덩치를 더 키우자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이 다른 사회적 논의들까지 집어삼킬 만큼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더 키우자는 쪽은 규제에 발목 잡혀있던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의 팽창은 국토균형개발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일뿐더러, 지나친 비대화가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맞서고 있다.
정말 서울이 지금보다 더 커지는 '초광역도시'가 된다면 도시 자체의 경쟁력이나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될까. 한국일보는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사실과 분석에 근거해 객관적 논의를 제공해줄 수 있는 다섯 명의 전문가들을 통해 이 논의를 풀어봤다. 전문가들은 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를 꼭 해소해야 하지만, 서울이 통합의 주체가 되어 작은 지방자치단체를 객체 형태로 편입하는 구조는 꼭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특히 생활권 불일치 문제의 근원은 서울 쏠림 현상에서 비롯된 만큼, 교통·의료 등 도시 기능별로 시도 경계를 넘어선 결정권을 쥔 기구(지방자치법에 명시된 특별자치단체)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본보의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신중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홍준현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가나다 순)다.
전문가들은 '서울 쏠림' 현상 때문에 이런 논란이 수면 아래 잠재하고 있다가 터져 나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자체들이 서울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결국 '서울에 모든 게 있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기 서울의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노태우 정부는 1989년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발표,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에 1기 신도시를 건설했다. 서울 주변에 대규모 주택을 짓고, 광역교통망을 신설하면서 서울 밖과 서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에도 서울 쏠림이 이어지자, 2기 신도시와 3기 신도시 구상이 잇따라 발표됐다.
서울 주변을 신도시들이 감싸는 구조가 이어지자, 서울의 경계는 그대로인데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계속 불어나고 '서울 실생활권'이 점점 비대해져 생활권 불일치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마강래 교수는 "김포는 원래 통근과 주거이동 등 생활권을 묶어보면 서울보다는 인천과 함께 묶이는 곳이었는데 15만 명 규모의 김포한강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바뀌었다"고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김포를 비롯한 경기권 신도시가 서울과 하나의 생활권이 됐고, 언젠가 터질 문제가 김포 편입 추진을 계기로 표면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방이 약하니까 수도권 집중이 심화해 집값이 폭등하고,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출산율이 0.78명까지 떨어졌다"며 "서울에 몰려 발생하는 '집적 이익'보다 '집적 불이익'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낡은 행정구역과 생활권 불일치를 합리화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 수도권 행정구역은 서울이 크고 경기가 작을 때 이뤄진 것인데, 이제는 경기의 인구(1,363만 명)가 서울 인구(940만)보다 1.45배나 많을 정도로 관계가 역전됐다.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는 조정 과정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창무 교수는 서울이 커지면 내부적 효율이 개선되고, 메가서울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는 "서울 인근 대도시권 개발로 사회적 비용이 높아졌는데 대표적인 게 통근시간"이라며 "행정구역이 확대돼 인접 지역과 결합하면 훨씬 효율적인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할 수 있고, 통근시간도 단축해 육아와 여가 시간 확대 등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지자체 간 이견으로 지지부진한 5호선 연장 사업이 편입을 계기로 강하게 추진될 가능성을 꼽았다.
그러나 서울 주변 도시들이 차례로 서울의 자치구 형태로 편입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행정구역만 확대하는 '메가서울'은 국가 발전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마강래 교수는 "서울과 주변 도시가 하나씩 통합하면 '서울'은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을 도넛 모양으로 둘러싼 경기에는 소외되고 낙후한 지역만 남는다"며 "이것은 경기도의 존망이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마강래 교수는 경기도의 재정보전금 문제를 들었다. 서울시가 25개 자치구 중 살림살이가 어려운 구에 지원(조정교부금)해주는 것처럼 경기도도 세수를 거둬 31개 시군에 재분배하는데, 김포 등의 서울 편입으로 낙후한 지역만 남게 되면 세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재정지원도 곤란해져 지역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이나 국가 차원으로 넓게 보면 '제로섬 게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김진유 교수도 "서울은 이미 메가시티여서 지속 발전하려면 비대화에 따른 비효율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며 "장거리 통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치솟는 집값 마련하느라 모든 자본을 투입하는 비효율과 삶의 질 개선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김포가 아니라 오히려 인천과 합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중진 교수는 "서울이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제공항과 국제항구이고, 두 조건(인천공항과 인천항)을 모두 갖춘 곳이 인천"이라며 "도쿄, 뉴욕도 항구이고 유럽도 많은 항구 도시들이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 편입을 통한 광역화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세계적 경향인 '메가화' 자체는 추진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주요 글로벌 도시들처럼 메가시티 전략은 필요하다는 것. 다만 '행정구역 통합'이 아니라 '주요 기능 통합'에 방점을 둔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준현 교수는 정치권에서 파리 런던 등이 메가시티의 '롤모델'처럼 언급되고 있는 사례를 언급하며 "메가시티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용어를 남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가시티는 '핵심(중심) 도시'와 인근 '주변 도시'를 기능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도록 해 교통·의료·일자리 등의 문제를 협력해 풀어나가는 구조인데, 개별 도시를 넘어 상위 단계의 의결권을 가진 별도의 거버넌스 체제가 존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국의 광역경제권인 '시티 리전'(city region)이 대표적이다.
홍준현 교수는 "영국의 맨체스터와 그 주변부로 이뤄진 지역(그레이터맨체스터)은 공동 정부를 구성하고, 제한된 범위에서 독자적인 과세권도 있다"며 "법인세율을 2%포인트 상향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과세권은 독자적 세원 마련은 물론 독립성과 직결된 중요한 권한이다. 각 지자체의 예산에 의존하면 의사결정에서 휘둘릴 수밖에 없고, 공동 이익보다는 개별 지자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홍 교수는 "한국도 2개 이상의 지방자치단체가 '광역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별도 조직(특별지방자치단체)을 구성할 수는 있지만, 과세권은 없다"며 "전 정부 때 초광역연합체로 만들어진 '부울경'도 자치단체장이 바뀌기도 했지만, 각 지자체의 재정지원을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과세권도 없어 사실상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쏠림이 심각한 한국은 무작정 수도의 메가시티화 전략을 쓰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941만 명) 경기(1,362만 명) 인천(298만 명)을 합친 인구는 전체(5,155만 명)의 과반(50.5%)을 차지해 비교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수도권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 상태에서 서울의 경쟁력만 높인다면 수도권으로 몰려 계속 광역화되고, 지방 쇠퇴로 엄청난 비용을 치를 수 있다.
마강래 교수는 "인구감소 시대라도 지방을 버리지 않는 한 학교·응급의료 등 필수 인프라 시설을 유지해야 해 행정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궁극적으로는 전국 단위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행정구역 개편은 주민 삶의 질 개선이 목적임에도 과거 여러 차례 추진됐다가 여야 간 이해관계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며 "정치권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