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 선 긋고 “인도적 교전 중단” 주장만 반복하는 미국... 둘의 차이점은?

입력
2023.11.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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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정치적 의미가 다른 개념” 분석
미의 교전 중단 카드는 ‘이스라엘 지지 의도’
“전투 중단만으론 위기 해소 못 해” 우려도

'휴전(Cease-fire)'이냐,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Pause)'이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해법을 두고 국제사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 필요성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전쟁 목표와 정치적 셈법에 따라 ‘휴전 대 일시적 교전 중단’이라는 방법론으로 갈라진 탓이다.

“교전 중단은 폭력 끝내라는 요구 아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주요 7개국(G7)이 인도적 교전 중단을 지지하는 반면, 유엔 등 국제단체와 아랍권 국가에선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양자의 차이점을 소개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기간·범위·규모에서 다르다”(존 커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휴전은 ‘몇 달 혹은 몇 년 이상의 장기적인 전투 중단’을 의미하며, 교전 중단은 ‘일시적·한시적이고 특정 지역 지원’을 염두에 둔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만 휴전과 교전 중단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다. 이 때문인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조차 휴전과 전투 중단이란 단어를 혼용했다. 헬렌 더피 네덜란드 라이덴대 교수는 “두 개념의 차이는 법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채드 헤인즈 교수도 “휴전은 영구적인 폭력 중단 협상을 위한 조건을 만들려는 시도인 반면, 교전 중단은 폭력을 아예 끝내거나 중단하라는 요구가 아니다”라고 WP에 짚었다. ‘일시적 교전 중단’은 사실상 이스라엘을 편들려는 의도가 있는 미국의 움직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 ‘이란 견제’ 차원에서도 휴전 주장할 이유 없어

실제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하마스에만 이익이 될 것”이라며 휴전에는 반대하고 있다. 자칫하면 하마스에 재무장할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미국으로선 이란 견제 차원에서라도 ‘하마스 파괴’를 추구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게 낫다. 현 단계에서 휴전을 말할 이유가 없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며 커진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에 ‘인도적 교전 중단’ 카드를 꺼냈을 뿐이다.

그러나 휴전 촉구 측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나온 가자지구 피해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교전 중단만으로는 인도주의 위기 해소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 위기대응 책임자 크리스티안 베네딕트는 “구호품 전달과 대피뿐 아니라 인프라, 특히 병원과 폭격을 당한 보호소를 수리하려면 지속적인 휴전이 필요하다”면서 “몇 시간 또는 며칠 만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헤인즈 교수는 “휴전은 군대의 논리와 이익이 아니라, 인간(생명)에 대한 관심에 기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휴전 협상을 전제로 한 일시적 교전 중단이라는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터 리케츠 전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휴전의 첫 단계로서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질 석방 없는 휴전과 교전 중단 모두를 거부하던 이스라엘은 9일 미국에 가자지구 북부의 민간인 대피를 위한 매일 4시간의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 계획을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이번 일시적 전투 중단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믿는다”라면서 “필요한 만큼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