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종료 이후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지구 통치 문제와 관련해 ‘또 하나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서안지구와 통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정치체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포스트 하마스’ 구상을 밝힌 것이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전후(戰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지속적 평화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가자지구 위기 이후 거버넌스(통치 체제)의 중심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와 열망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이 주도하는 정부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산하 서안지구와 통일된 가자지구가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하면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도 재확인했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가 하마스에 의해 운영돼선 안 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며 “유일한 질문은 과도기가 필요한지, 그리고 안보 확보를 위해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한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종전 후 가자지구 대책 관련 장기 목표도 제시됐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을 것 △가자지구가 테러리즘 근거지로 사용되지 않을 것 △전후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지 않을 것 △가자지구 봉쇄와 포위를 시도하지 않을 것 △가자지구 영토를 축소하지 않을 것 △서안지구에서 테러 행위가 발생하지 않게 할 것 등의 원칙을 열거했다. 주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단속이다.
블링컨 장관은 “비록 우리가 긴박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나, 미래에 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오늘이라고 믿는다”며 “장기 목표와 거기까지의 도달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구상이 아직 거칠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 달간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이 지역을 누가 통치할지 불분명하다”며 “블링컨 장관이 가자지구 안정화 세력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부패 정치인으로 여기고 있는 만큼 그가 가자지구에서 환영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미래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인 일론 레비는 8일 “하마스 이후 시나리오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