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는 노모(老母)를 추운 날씨에 알몸으로 집 밖으로 내쫓아 숨지게 한 40대 딸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 백강진)는 존속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12월 9일 오후 6시 50분쯤 전북 전주 완산구 자택에서 B(당시 78)씨를 알몸으로 내쫓고 방치해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함께 살고 있던 여섯 살 위인 오빠도 중증 지적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증 치매에 걸린 모친을 돌봐왔던 남매는 사건 당일 "씻지 않아 냄새가 난다"며 B씨의 옷을 벗겨 집 밖으로 내보냈다. 당시 바깥 기온은 10도가량으로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B씨는 담요 한 장만 걸친 채 건물 주차장 휠체어에 앉아 1시간가량 추위에 떨었다.
지나가던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B씨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A씨는 B씨에게 옷을 입히지 않고 거실에 그대로 방치했고, B씨는 같은 날 오후 9시 50분쯤 숨을 거뒀다. 당시 경찰 연락을 받은 사회복지사가 집을 방문했을 당시 B씨는 나체로 엎드려 누운 채 담요를 덮고 있었다. A씨는 사회복지사가 "왜 옷을 벗겼느냐"라고 묻자 "B씨가 자꾸 옷을 벗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가 B씨의 상태를 확인했을 당시에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저체온증 또는 급성 심장사로 보인다"면서도 "당뇨합병증이나 다른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10년 넘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어머니와 오빠가 내 보호자였지, 내가 어머니를 돌볼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또 "옷을 벗겨 밖으로 내보낸 건 학대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진행된 1심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저체온증 외 다른 기저질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해자는 집 안에서 담요를 덮고 있었고, 피해자가 옷을 입지 않으려 했다는 피고인의 말에 수긍이 간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을 줘 자신의 말에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피해자를 집 밖으로 내보낸 행위 자체만으로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며 "피해자에게 다른 외부인자 없이 갑작스레 저체온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온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 역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을 오랜 기간 돌봐 준 고령의 모친을 학대한 행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정상적인 판단력 결여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 학대 범행으로 보이고, 오로지 피고인만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