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 장성들 전성시대... 내년 총선 출마 러시

입력
2023.11.09 04:30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조용히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 정치권이 검사 공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물밑에서 출마를 저울질하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 후보들이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 한민구 장관과 황인무 차관 이후 6년 만에 육사 출신 국방부 장·차관을 배출했고 민간 영역이던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자리까지 육사 출신 김정수 전 육사 교장(육사 43기)이 거론되는 등 상황도 호의적이다.

8일 현재 자천 타천으로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육사 출신은 벌써 10명이 훌쩍 넘는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었던 서욱 전 장관(41기)과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종섭 전 장관(40기)에게 우선 시선이 쏠린다. 서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간판으로 고향인 광주광역시 북구 출마를 노리고 있다. 이 전 장관도 역시 고향인 경북 영천군이 속한 경북 영천청도 지역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가 거론된다.

2018년 ‘9·19 군사합의’ 당시 남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44기)은 지난 2일 고향인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소속 김 전 사령관은 출마 기자회견에서 “9·19 합의 폐기와 효력정지를 주장하는 무분별한 언행은 접경지 주민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9·19 합의’ 효력정지를 추진 중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37기)을 정조준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특수 관계’에 있는 인물들도 출마를 고려 중이다. 최근 퇴임한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42기)은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에 출사표를 던질 예정으로 알려졌다. 육사 39기로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던 고석 예비역 준장도 윤 대통령과의 인연이 부각되면서 경기 용인병 지역구 출마가 유력하다. 고 전 법원장은 윤 대통령과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다. 육사 동기 가운데 고 전 법원장이 2008년 처음으로 장군 진급하자 당시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으로 있던 윤 대통령이 직접 영전을 축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비역 4성 장군인 백군기 전 용인시장(29기)과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37기)도 각각 경기 용인갑 지역구와 충남 논산계룡금산 출마를 노리고 있다. 19대 의원을 지낸 백 전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했지만 정계 은퇴 의사를 밝히지 않고 민주당 간판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박 전 사령관은 2020년 총선에서 출마했던 충남 천안을 지역구 대신 충남 논산계룡금산 출마를 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 출신 현역 의원들도 총선을 준비 중이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을·31기)은 기존 지역구, 김병주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육사 40기)은 경기 남양주을 출마가 유력하다. 김 의원은 “육사 생도 시절 남양주 별내로 행군을 자주 했다”면서 출마 지역과 육사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육사 출신들의 ‘금배지’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은 “이제 때가 왔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예비후보들이) 군 커리어를 가지고 (총선에) 도전했을 때 주목받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북 대결구도와 유독 육사 출신을 중용하는 윤석열 정부의 특성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대통령실과 여당이 부추기고 있다고 봤다. 그는 “군을 앞세워 안보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에 야당도 대응하면서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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