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틈새에서 어른이 된 아이들

입력
2023.11.11 04:30
10면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가난 속 성장한 여덟 명 지켜본 10년의 기록 
정책 연구자 된 교사가 본 '빈곤과 청소년'

공황장애를 앓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수정은 안정적인 직장만 얻으면 가난에서 벗어나리라 믿었다. 마침내 20대 초반 유치원 교사가 됐을 때, 수정은 미래를 '낙관했다'. 그러나 엄마는 도박에 중독됐고 꾐에 빠져 사기 피해를 입었다. 수정은 빈곤의 늪에서 허덕였다.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 대물림의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다. "가난한 부모의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해 문제 해결 수단이 없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가족 공동체'에 젖어 있다." 즉 우리 사회는 자녀 양육, 부모 봉양 등 제도로 보장돼야 할 것들이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그러다 보니 빈곤 가정의 아이들은 출발선부터 다른 불공정 게임을 뛰게 된다. 불평등은 고착화될 뿐 해소되지 못한다.

책은 1990년대 태어나 2010년대 청소년기를 보내고, 2020년대 청년기를 지나는 8명의 삶을 쫓는다. 소년범 출신의 현석, 학교 밖 청소년 혜주 등. 성격도, 상황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가난은 삶에 제약을 낳고, '평범한 가정'을 갈망하게 했다. 가난을 증명해야만 도움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누군가는 빈곤 청소년의 서사에 '이미 많이 나온 이야기'라며 심드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5년간 영어를 가르친 교사이자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연구자인 저자의 기록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10년 넘게 관계를 유지해 온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학자로서의 냉정함이 어우러져 가난의 사회적 구조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사회가, 더 나아가선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책을 통해 말한다.

이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