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는 정녕 '마녀소굴'인가... 맘카페 운영자가 밝히는 미지의 세계

입력
2023.11.11 04:30
10면
정지섭 '맘카페라는 세계'

소재부터 이목을 끈다. '맘카페'라니. (대체로) 금남의 구역임은 물론이고, 출산 여부에 따라 여성이라 해도 가입이 쉽지 않은 곳. 동네 유명 푸드트럭이 영업을 하는 시간이나 위치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각종 '살림템(살림살이 아이템)'에 대한 쏠쏠한 정보가 게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맘카페 추천'이라는 수식어만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고, 이따금 지역 맘카페의 눈 밖에 난 가게는 파리 날릴 각오해야 하는 입소문의 근원지.

가부장적 결혼제도 안에서 괴로워하던 아낙네들이 수다로 한을 풀던 빨래터를 온라인으로 옮긴 것처럼, 엄마들의 해우소이자 정보통 역할을 하는 각종 맘카페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도 어느덧 15년 가까이 되었다. 그 수만도 약 1만2,000개에 달할 정도다. 오죽하면 기혼 여성들 사이에서 "산후우울증의 특효약은 맘카페"라는 말이 나온단다.

하지만 요즘 맘카페는 곧잘 사회 문제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2018년 맘카페에서 이루어진 마녀사냥으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자살했고,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맘카페 회원의 갑질에 시달리다 잇따라 병원을 폐업하기도 했다. 집단 이기주의와 교권침해,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 확산 같은 행태로 맘카페는 곧잘 입방아에 오른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로 사회에서 큰 목소리 내기 어려운 엄마. 그러나 집단적으로 뭉쳤을 때 폭발적인 사회 이슈를 초래하는 맘카페. 우리는 이 간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신간 '맘카페라는 세계'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된 '맘카페'의 속살을 파헤친다. 국책은행에서 10년간 일한 뒤 지금은 1남 1녀를 키우는 전업주부인 정지섭(필명·38)은 지난 5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한 '비상업적 지역 맘카페'를 운영했다. 맘카페 운영 경험을 토대로 온라인 커뮤니티 내부의 규칙과 질서, 문법, 성격 등 이곳만의 유별난 특성을 분석한다. 그리고 저출생 사회에 대한 우려와 제언도 '엄마'의 입장에서 제안한다.

책은 맘카페라는 수면 아래의 공간을 내부인의 목소리로 처음 분석한 결과물이라는 데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출판사는 '국내 최초의 맘카페론'이라는 수식어로 책을 설명하는데, 사회 분석의 목적을 갖는 연구자나 사회학자 등에게 맘카페의 총체를 설명하는 귀중한 1차 자료가 됨직하다. 덧붙여 '맘충'이라는 멸칭이 붙을 정도로 양육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짙은 한국 사회에서 맘카페의 구성원이 직접 맘카페 문화를 알리고, 또 때때로 억울한 공격에 항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나, 엄격한 의미의 '사회연구서'라기보다는 5년 동안 하나의 맘카페를 운영한 운영자의 주관적인 경험담에 가깝다. 저자는 모성뿐 아니라 여성의 역할, 맘카페 회원들의 특성과 한국 사회에서 맘카페가 처해 있는 위치, 자주 올라오는 글과 운영 방식, 다른 커뮤니티와 달리 맘카페에만 도드라지는 분위기, 맘카페의 효용과 부작용 등을 구체적으로 짚고 사회 현상을 진단한다. 하나하나 흥미로운 내용이나, 주장이 저자의 체험과 개인적 에피소드에 머물러 있어 자의적이라 느낄 수도 있겠다.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모성이 본능'이라는 주장을 거듭 강조하고 성 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낡은 여성관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엄마는 자고로 선하고 자애로워야 하는 존재이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서술은 오히려 여성과 엄마의 상(像)을 더욱 고정적인 틀 안에 가두는 것 아닐까. 여성이 받는 사회적 압박을 설명하기 위해서라지만 "여성은 모성뿐 아니라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외모와 몸매 관리도 해야 하지만 엄마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다가는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게으른 여성이 되기 십상"이라는 접근도 같은 오류를 품고 있다.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거대하고 힘 있는 집단이 되어버린 맘카페의 내면을 드러내고, 왜 엄마들이 맘카페에 빠져드는지 보여주며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가치 있다. 맘카페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데에는 엄마들의 '자신을 약자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내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당면한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않고 맘카페를 동원하는 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통찰이 엿보인다. 더 나아가 저자는 맘카페의 부작용을 성찰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향한 혐오에 용기 있게 맞선다.

"엄마가 되어 맘카페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동시에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친교를 쌓으며, '엄마라는 역할 너머'의 어느 개인이 지닌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113쪽)."

저자가 말하는 엄마들이 맘카페를 하는 이유에 한국 사회의 모순이 압축되어 있다. 모든 삶과 행복의 준거가 타인의 시선에 멈춰 있고, 노동과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존적 번뇌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오늘날 '마녀소굴'의 누명을 쓰고 혐오와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는 맘카페인 것이다. '맘카페라는 세계'가 보여주는 세상은 고립된 '현재'다. '맘카페라는 세계'를 뛰어넘는 엄마들이 만들어내는 '미래'를 꿈꿀 때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