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대기업 법인을 고발할 때 총수 등 특수관계인을 함께 검찰에 넘기겠다는 제도 개선안을 수정한다. 공정위는 친기업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가 도리어 기업 규제를 강화한다는 재계 반발에 계획을 선회한 모습이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배후로 의심받는 총수 등이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8일까지 행정예고한 공정거래법 고발 지침 개정안과 관련,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개정안은 사업자(법인)를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 편취 행위로 고발하면 이에 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는 게 골자다. 조사를 통해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밝혀진 특수관계인만 고발 가능한 현행 규정보다 총수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개정이다. 공정위 임의조사만으론 특수관계인이 일감 몰아주기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입증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감안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전날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 6개 경제단체와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후 고발 지침 개정안 재검토로 입장을 정리했다. 고발 지침 개정안에 대해 의견 수렴을 거친 20일의 행정예고 기간 동안 나온 재계 불만을 수용한 것이다.
재계는 개정안이 고발 사유로 제시한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경우 △국가 재정에 현저한 영향을 끼친 경우 △중소기업에 현저한 피해를 미친 경우 등을 문제 삼았다. 자의적, 추상적인 고발 사유를 적용하면 특수관계인이 예외 없이 고발당한다는 주장이다. 또 공정위가 '자동 고발'이란 원칙에 갇혀 총수 고발을 남발하면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경제 형벌을 완화하기로 한 윤석열 정부가 총수 규제를 강화하는 건 엇박자라는 불만도 드러냈다.
공정위는 고발 사유를 보다 명확하게 바꾸는 식으로 개정안을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고발 지침 개정 방침을 아예 철회할 여지도 있다. 이 사안을 잘 아는 관계자는 "현재 지침하에서도 사익 편취 행위에 관여한 특수관계인을 고발할 수 있는데, 이를 최종 판단하는 전원회의가 적극적으로 결정하면 된다"며 "고발 지침 개정으로 분란만 야기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게 맞지 싶다"고 말했다.
개정안 재검토를 두고 공정위가 후퇴했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현행 지침을 유지하면 일감 몰아주기를 주도했을 가능성이 큰 총수의 잘잘못을 따질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를 감시하는 게 핵심"이라며 "재계 반발에 물러선 이번 일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취지에 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