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전, 가자지구 주민들은 과연 통치 세력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었을까. '이스라엘 제거'라는 하마스의 목표에는 공감했을까. 단정할 순 없지만, 정답은 '아니오'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는 아랍권 여론조사기관 아랍바로미터가 개전 하루 전인 10월 6일(현지시간)까지 가자지구에서 진행했던 설문조사다. 여기서 확인된 가자지구 주민들의 여론은 "대다수 주민은 하마스를 불신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무력보다는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바랐다"는 말로 요약된다.
아랍바로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게재됐다. 중동·아프리카 국가에서 2006년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해 온 아랍바로미터는 이스라엘의 봉쇄, 하마스의 통제로 가자지구 내부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제한적으로나마 해당 지역 여론을 살펴 왔다.
이번 조사는 아랍바로미터 공동창립자 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아마니 자말, 아랍바로미터 이사 마이클 로빈스가 이끌었다. 여론조사에 참여한 가자지구 주민은 399명이다. 표본이 크진 않지만, 전쟁 직전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여론을 보여 주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 조사 결과다.
조사결과를 보면, 하마스 정부에 대한 불만과 정권 교체 여론이 상당히 높았다. 우선 ①'하마스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라는 물음에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주민이 응답자 중 67%에 달했다('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44%,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23%). '신뢰한다'는 답변은 29%뿐이었다. 또 ②정당 선호도를 물었을 때 하마스를 택한 응답자는 27%에 불과했다. 2021년 조사에서의 지지율(34%)보다 7%포인트 하락했다.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이끄는 온건파 정당 파타의 지지율(30%)보다도 낮았다. ③'지금 당장 정치 지도자를 뽑는다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현 하마스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를 지목한 비율은 24%에 머물렀다. 파타당 지도부로 현재 이스라엘에 구금돼 있는 마르완 바르구티가 32%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의 지지율은 12%였다. 연구진은 극심한 경제난 등이 하마스에 등을 돌린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대(對)이스라엘 무력 사용을 정당하다고 여기는 하마스식 접근법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④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응답자 73%는 '평화적 해결책'을 바랐다. 군사적 해결을 원한다는 답변은 20%에 그쳤다. 이는 가자지구 주민 54%가 분쟁 해결책으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두 국가 해법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국경선을 기준으로 각각 국가를 건설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다툼을 막자는 내용이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연구진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 살상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에서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 때 하마스를 선출한 책임에서 가자지구 주민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오히려 대다수 주민은 하마스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봉쇄(2010년) 등 이스라엘이 강경책을 펼 때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지도가 높아졌던 과거 여론조사에 기반하면, 현재 이스라엘의 강공이 곤두박질친 하마스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려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연구진은 "'하마스 섬멸'을 명분으로 가자지구에 고통을 가하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 등이 민간인 안전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