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할 시간 더 남았기를..” ‘반려견 치매’와 싸우는 개어멈들의 소망

입력
2023.11.07 09:00
'반려 고수'를 찾아서

“많이 건강해졌다. 코난이 잘 지내고 있었구나!”

오랜만에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은 반려견 ‘코난’(16∙닥스훈트)을 본 우리동생 관계자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코난이는 나이 탓에 그렇게 빠르게 걷지는 못했지만 꼬리만큼은 누구보다 활발하게 흔들었죠. 낯선 사람을 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착한 반려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난이의 삶에는 큰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보호자 나영 씨와 진정은 씨는 현재 코난이가 ‘인지기능장애증후군’(Cognitive Dysfunction Syndrome)을 앓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소위 ‘반려견 치매’라 불리는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은 뇌신경이 손상돼 방향감각을 잃거나 반려인과의 상호작용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이 든 개들이라면 조심해야 할 질병으로 손꼽히는 질병이죠.

그렇지만, 그런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하기엔 코난이는 인터뷰 내내 건강해 보였습니다. 반려인을 향해 입맞춤과 간식을 요구할 정도로 반려인을 향해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죠. 지난 2년간, 코난이에게, 그리고 나영 씨와 정은 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형제 잃은 슬픔에 비장 떼는 고통까지.. 코난이의 수난

코난이는 2007년 나영 씨와 정은 씨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경기 양주시의 한 동물보호소에서 지내던 코난이의 모습을 본 두 사람이 입양을 결정한 것이죠. 나영 씨는 “코난이가 잠시 몸을 털었는데 털에서 비듬이 민들레 홑씨처럼 수도 없이 떨어졌다”며 “당시 열악한 상황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떴는데, 집에 와서 관리해 주고 나니 예쁘게 탈바꿈했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이미 나영 씨와 정은 씨의 가족으로 지내고 있던 ‘쿠바’라는 닥스훈트도 새 식구인 코난이를 반갑게 맞아줬다고 하네요. 그렇게 코난이는 잔병치레 없이 15년간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나 3년 전, 쿠바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코난이도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됐습니다. 쿠바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한 달 만에 우연히 진행한 건강검진에서 비장에 종양이 발견된 겁니다. 그나마 건강검진을 통해 종양을 발견하고 다행이라 생각하고 비장 절제술을 진행했지만, 그로부터 1년 만에 코난이는 더 큰 난관을 마주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는데 코난이가 하울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목소리가 너무 서글프게 들렸어요. 쿠바도 없고, 홀로 지내다 보니 우울증을 느끼는 건가 싶었죠.

그러나 한번 눈에 들어온 코난이의 이상행동은 그 뒤로도 두 사람의 눈에 반복해서 포착됐습니다. 결국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서야 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코난이는 매일 오후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음은 약 두 시간 동안 지속됐습니다. 정은 씨는 “코난이 모습을 보면서 홀로 지내는 것을 잘 감당하기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돌아봤습니다.

한 번 이상행동이 발생하고 나니 또 다른 행동들도 발견됐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코난이가 집 곳곳을 배회하는 행동이었죠. 발톱 소리 때문에 정은 씨가 잠을 깨는 일이 자주 벌어진 겁니다. 코난이는 원래 한 군데에서만 잠을 청하던 성격이었는데, 밤마다 돌아다니는 행동이 반복됐다고 하네요.

결국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영 씨와 정은 씨는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우리동생 김희진 원장은 “대화를 나눠보니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이 아닌가 의심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김 원장은 “보통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진단할 때는 다른 질병의 임상증상과 대조해 보곤 하는데 코난이의 경우 겹치는 임상증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지기능장애증후군으로 오인할 수 있는 질병은 관절염입니다. 코난이의 증상 중에는 장애물이 없음에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는 증상도 있었는데요. 김 원장은 “반려견이 관절염 통증을 이유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변 실수를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코난이의 경우 밤마다 배회하는 증상도 나타났으니 관절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얘기죠.

결국 코난이의 상태는 인지기능장애증후군으로 확정됐습니다. 김 원장은 당시 임상시험 중이었던 인지기능장애증후군 치료제를 권했고, 나영 씨와 정은 씨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약이 전부 아냐” 반려견 나아지게 한 보호자의 헌신

약의 효과가 있었는지, 복용 1개월 만에 코난이의 이상행동은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약에 못지않게 코난이의 증상에 생활 패턴을 맞춘 보호자들의 헌신도 코난이의 상태 개선에 일조했습니다. 나영 씨는 “초기에는 코난이의 청력이 아직 살아 있을 때라 나가는 발소리를 조심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코난이가 사람이 나가려 하면 불안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세심한 외출’은 올여름, 코난이의 청력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청력뿐 아니라 시력도 예전만 못한 만큼 보호자들은 집 안의 계단을 비롯한 모서리를 알아차리도록 노란색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안전 유도선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보호자들도 행동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영 씨와 정은 씨는 분리불안 해소를 위해 고용한 펫시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반려견 행동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은 펫시터의 도움 덕에 이들은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나영 씨는 “퍼즐 간식통을 통해 코난이가 먹이를 스스로 찾아서 먹게끔 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게 뇌 기능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원장 역시 이 방법을 전해듣고 “매우 좋은 방법”이라며 “강아지들은 기본적으로 먹을 것을 찾는데, 이를 이용한 놀이를 해주는 게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은 정상적인 뇌 기능을 최대한 보전하는 게 목적”이라며 “이 과정에서 놀이가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원장은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앓는 반려견의 보호자들을 직접 마주하면 막상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치료제도 있는 상황이고,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례도 있다”며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나영 씨와 정은 씨 역시 “보호자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아이도 나아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코난이가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이라는 걸 알았을 때, 한편으로는 감사했어요. 쿠바는 뭘 시도해 보기도 전에 너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거든요. 그런데 코난이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죠.”(정은 씨)
“그래서 그런지, 저는 더 바랄 건 없어요. 지금 이대로 서로 교감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까지 교감하다가 떠나보낼 수 있도록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나영 씨)

보호자들의 의연한 마음가짐이 어쩌면 코난이를 더 나아지게 한 가장 큰 비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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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