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휘슬을 불자 전남 목포고 체육관의 센터 서클로 유니폼 차림의 또래 여고생들이 몰려들었다. 노란색 유니폼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빨간색은 하나, 둘, 셋, 넷··· 이제 곧 심판이 공을 던져 올리면 경기가 시작될 판인데 한 명이 부족하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여고 1학년 포워드 박은성(17)은 자신의 고교 데뷔전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빼빼 마른 짧은 머리의 이 선수는 센터 서클이 아닌 상대편인 대전여상 코트 우측 코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쟈는 왜 혼자 저깄댜?” “어데 안 좋나···.”
체육관 좌석을 듬성듬성 채운 자원봉사자와 학부모들이 수군거렸다. 곧 심판이 점프볼을 했다. 이렇게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첫날(10월 14일) 여자 고교 농구 경기는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은성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동료들이 3점슛을 꽂아 넣은 후 수비하러 자신의 코트로 돌아갈 때도 은성만 상대편 코트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휑한 코트에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동료들의 수비 장면을 바라봤다. 동료 4명이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며 상대편을 막아보려 했지만, 코트는 야속할 만큼 넓었다. 대전여상은 5명이 볼을 이리저리 주고받으며 수비수를 따돌린 뒤 림을 향해 공을 던졌다. 멀찍이 서 있던 은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슛이 빗나가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기다렸던 데뷔전이기에 은성도 간절했다. 공격 때라도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2학년 윤민서(18)가 돌파 동작으로 수비수를 끌어낸 후 은성에게 패스했다. 그러나 볼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평소였다면 공을 받아 3점슛을 던졌을 것이다. 재활 중인 왼쪽 다리가 순간 욱신거렸다. 벤치를 바라봤다. 감독과 코치 외에는 목발을 곁에 둔 선배 한 명밖에 없었다. 그는 40분 경기 내내 그렇게 3.3㎡(1평) 남짓한 공간에 갇힌 듯 서 있었다. 동료들은 엄청난 투지로 시소게임을 벌였지만 거기까지였다. 59대 65. 삼천포여고의 석패였다. 은성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6개월 전부터 예견된 패배였다. 4월에 학교 체육관에서 레이업슛을 하던 은성은 팀원과 부딪혀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왼쪽 무릎에서 ‘딱’ 소리가 났다.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기나긴 재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금·토·일요일마다 혼자 기차를 타고 경기 수원의 병원까지 왕복 980km를 오가며 치료에 전념했다. 의사는 “빨라야 내년 2월에나 코트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은성에게는 너무 큰 시련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껑충한 키(160㎝)를 눈여겨본 체육 교사의 권유로 농구공을 처음 잡은 그는 프로행을 목표로 인생을 걸었다. 부산 동주여중을 거쳐 열여섯 나이에 홀로 삼천포로 넘어온 것도 프로리그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삼천포여고는 1982년 창단 이래 프로·실업 선수를 100명 넘게 배출한 명문이었다.
농구부 코치 안철호(45)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국체전이 코앞인데 선수가 없었다. 원래 삼천포여고 농구부원은 6명이었다. 은성이 다친 후 ‘외줄타기’가 시작됐다. 전국체전 직전까지 줄줄이 예정된 경기에서 남은 5명 중 1명이라도 다치면 팀은 이번 시즌을 강제로 마쳐야 했다.
체전을 한 달 앞두고 사달이 났다. 3학년 정귀안(20)의 십자인대가 연습게임 중 끊어졌다. 체전 직전에는 3학년 권민서(19)가 허벅지 부상을 당했고, 1학년 김보민(17)은 장염으로 일주일째 입원해 있었다. 경기 당일 정상적인 선수는 2명뿐이었다. 농구는 5명이 코트에 서야 게임이 시작된다. 목발 짚은 귀안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안 코치는 은성을 불렀다.
안 코치는 일단 경기만 성사되면 은성을 빼고 4명만으로 경기를 치르려고 했다. 프로 출신인 그는 재활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뛰고 싶어 하는 은성의 의지가 너무 강했다. 팀원들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뛰는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은성은 평소에도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 선수였다. 안 코치는 고민 끝에 ‘작은’ 과제를 내줬다.
은성은 이날 데뷔 무대에서 8득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수적 열세는 극복할 수 없었다. '내가 3점슛 2개만 더 넣었다면 이겼을 텐데···' 농구와 팀을 너무 사랑했던 은성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어른들은 어린 제자를 사지로 내몬 것 같아 함께 울었다. 삼천포여고 체육교사 겸 농구부 감독인 강중수(53)는 경기 전 불편한 다리로 코트 구석까지 걸어가는 은성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다. 제자들을 응원하러 온 교사들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 농구가 마주한 불편한 현실을 어린 선수들과 지도자가 맞닥뜨린 것뿐이었다.
광주광역시 방림초등학교에서 농구를 가르치는 송윤기(43) 코치도 경기를 지켜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고1인 그의 딸도 전통의 강호인 광주 수피아여고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잘 안다. 선수 부족은 삼천포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송 코치의 머릿속엔 지난 7월 초 수피아여고와 대전여상의 주말리그 경기가 스쳐갔다.
당시 수피아여고는 청소년 대표팀 차출과 부상이 겹쳐 선수 3명만 정상 출전이 가능했다. 학교는 ‘고의 패배’를 택했다. 경기 시작 후 부상 선수 2명이 코트 밖으로 나온 뒤, 남은 선수 가운데 2명은 일부러 파울을 범해 차례로 5반칙 퇴장을 당했다. 4분 52초 만에 코트에는 선수 1명만 남았고, 경기는 ‘자격상실패’로 종료됐다. 수피아여고는 주말리그의 다른 두 경기도 이런 방식으로 졌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팀이기에, 송 코치는 현실을 믿기 어려웠다.
2013년부터 전국중고농구연맹에서 각종 대회 실무를 주관하며 여자 고교 농구의 참담한 현실을 지켜본 최남식(40) 사무국장에게도 올해 주말리그는 낯설었다. 올해부터 고교 농구팀의 주말리그 참여가 원칙이 되자, 최 국장은 국내의 모든 여고 농구부(19곳)에 공문을 보냈다. 이 가운데 5곳(26.3%)은 선수 5명이 없다는 이유로 불참 통보를 했다. 참가팀 14곳 중 7곳도 선수가 딱 5명뿐이었다. 선수가 다치면 4명만으로 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예상대로 비정상적인 경기가 속출했다. 주말리그 38경기 중 4명만으로 경기를 뛰거나, 고의로 파울을 범해 경기를 조기에 끝내는 ‘비(非)농구’가 9경기(23.9%)에 달했다.
고교 농구판에서 선수들이 왜 사라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농구 선수가 되길 바라는 부모가 적기 때문이다. 저출생으로 유소년 인구가 줄어든 데다 자녀가 한두 명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실패 가능성이 큰 운동 선수를 시키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농구 선수로 오래 먹고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내 여자 프로구단 6곳은 매년 12명 안팎의 신인을 뽑는데 선수 수명이 길지 않다. 2018~2019년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 13명 중 여전히 프로 무대에서 뛰는 선수는 6명(46.2%)뿐이다. 프로에서 외면받으면 차선책도 마땅치 않다. 서울 소재 대학에는 여자 농구부가 없어, 유명 대학 졸업장도 따기 어렵다. 대학에서 실력을 쌓아 프로에 가는 사례도 드물다. 현재 국내 프로선수 94명 중 대졸은 9명(9.6%)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딸에게 농구 선수를 권유하는 건 '도박'이다. 국내에선 보통 11~12세 때 농구부에 들어가면 대부분 프로 진출을 꿈꾸며 농구 외에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
이런 현실 탓에 농구 생태계에선 새싹부터 말라가고 있다. 2021년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 우승팀인 광주 방림초는 3월에 농구부를 폐부하고 취미 중심의 ‘광주방림농구클럽’으로 전환했다. 부원이 3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연암초 농구부는 지난 5월 소년체전 당시 선수가 4명밖에 되지 않자, 간식 등 선물을 사주며 일반 학생을 설득해 코트에 세웠다. 연암초 김수희(44) 코치는 “선수 수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 탈모까지 왔다”고 했다. 현재 농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초등 농구부는 23곳(299명). 이 가운데 3곳은 올해 대회에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선수가 올라오지 않으니 중·고교도 무너진다. 지난 7월 열린 주말리그 여중부 예선 때는 28경기 중 6경기(21.4%)가 자격상실패로 끝났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숙명여중도 선수가 없어 고의 파울로 경기를 조기에 끝냈다.
당연히 경기력도 떨어진다. 대한농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고교 선수는 모두 148명뿐이다. 일본(5만1,266명)의 0.3% 수준이다. 선수 간 경쟁 없이 학년만 쌓이면 주전을 보장받으니 성장 동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5년 이후 9년간 국가대표 한일전(연령별 대표 경기 포함)은 1승 11패로 압도적 열세다. 비극은 뿌리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2014년 한중일 주니어종합경기대회에 참가했던 지도자 A씨는 “당시 여자 고교 우승팀에 다른 학교 선수를 받아 ‘드림팀’을 구성했는데도, 일본 팀한테 적게는 30점 차, 많게는 60점 차로 졌다”고 했다.
고교 지도자 B씨는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 팀에 선수가 24명이라 몇 분이라도 경기에 나가고 싶어 1학년 때부터 매일 슛을 1,000개씩 쐈다”며 “지금은 선수가 없어 잘해도 못해도 모두 주전”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지도자 C씨는 "워낙 선수가 귀해 양손으로 레이업슛만 할 줄 알아도 프로에 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 농구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 희망은 있다. 엘리트 부원은 말라가고 있지만, 클럽에서 농구하는 여학생은 늘고 있다. 클럽은 ①학교 내 동아리 활동인 학교스포츠클럽 ②WKBL(한국여자농구연맹) 또는 프로 산하 유소년 농구클럽 ③사설 클럽 등으로 나뉜다. 지난해 ① ② 소속으로 각종 농구 대회에 참여한 초·중학생은 6,900명에 달한다. 농구교실 등 사설 클럽 소속 학생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직업 농구 선수를 꿈꾸며 '직진'하는 학생은 줄었지만, 생활 스포츠로 농구를 즐기는 아이들은 늘었다는 의미다.
농구협회도 클럽 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협회 ‘미래발전위원회(미발위)’는 지난 5월 “10년 내 100만 농구 선수를 만들겠다”며 디비전 시스템 도입안을 내놓았다. 선수(엘리트)와 비선수(클럽)를 구분해 대회에서 함께 뛰지 못하게 한 구조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팀 실력에 따라 1부(엘리트)부터 5부(시·군·구)까지 구분해 대회를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양질의 경쟁 무대를 만들면 유소년 농구 저변이 넓어지고 클럽팀에서 뛰는 학생 가운데 재능 있는 선수는 엘리트 운동부로 넘어올 수 있다. 정재용 미발위 위원장은 “디비전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의 경기 기록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할 것”이라며 “5부 리그에서 뛰더라도 경기마다 30점 이상 득점하는 학생은 재능이 남다를 수 있으니 통합 DB를 통해 이런 유망주를 발굴· 육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회의론도 있다.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일본처럼 ‘운동하는 학생’ 모델이 나오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변화를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농구판 전체가 고사할 것이란 절박감이 크다. 미발위 위원인 이윤희 서울 경인고 교사는 “중·고교 때 클럽에서 농구를 경험하고 운동에 재미를 느낀 학생들이 부모가 되는 시점이 오면, 사회 전체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10년, 20년이 걸려도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